[음주운전… 비극의 시작]<上> 지옥으로 바뀐 삶
“그르르륵.”
침대에 누워 있는 윤찬복 씨(51)의 목에서 굵은 가래가 끓어올랐다. 윤 씨 옆에 있던 아내 민다 알티아가 씨(41)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목에 붙인 호스에 걸린 가래를 빼주고 손수건으로 닦았다. 윤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5년째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다. 윤 씨의 가래 소리는 본보 ‘시동 꺼! 반칙운전’ 취재팀이 지난달 26일 광주 북구의 임대아파트 자택에서 아내를 인터뷰하는 1시간 동안 윤 씨가 낸 유일한 소리였다.
○ 음주운전이 파괴한 ‘코리안 드림’
민다 알티아가 씨(오른쪽)가 26일 광주 북구 자택에서 남편 윤찬복 씨의 목에서 가래를 빼낸 뒤 목을 닦아주고 있다. 광주=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윤 씨는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아 눈만 껌뻑이는 식물인간이 됐다. 단란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60대 남성 운전자는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034%로 음주운전 법정기준치(0.05%)를 넘지 않아 사건이 공식적으론 음주 교통사고로 처리되지도 않았다.
알티아가 씨는 남편만 바라보고 한국으로 와 세 자녀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온지라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다. 사고 보험금은 병원비와 세 자녀 양육비용으로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3년 동안 병원에서 남편을 간병했지만 더이상 입원비를 내지 못해 집으로 옮겨 연명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알티아가 씨는 딱한 사연을 접한 교통안전공단이 2011년부터 교통사고 피해 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4년 동안 3000여만 원을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알티아가 씨는 “세 아이가 꼼짝없이 누워 있는 아빠한테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할 때마다 삶이 억울해 눈물이 난다”면서 “아무 잘못도 없는 내 남편을 이렇게 만든 음주운전이 너무 원망스럽다”며 울먹였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2년 음주운전 1건으로 치른 사회적 비용은 3685만 원으로 전체 교통사고 평균인 1264만 원의 3배에 달했다. 음주운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매년 1조 원을 상회한다.
○ 피해자를 절망시키는 가해자의 뻔뻔함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들을 더욱 울분에 빠뜨리는 건 가해자들의 뻔뻔한 태도다. A 군(12)은 2010년 4월 강원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친구와 놀다가 갑자기 후진하는 차량에 깔려 오른팔과 다리, 머리를 크게 다쳤다. 가해 남성은 혈중알코올농도 0.129%로 면허가 취소될 만큼 만취 상태였지만 A 군을 병원으로 옮기기는커녕 조수석에 앉았던 부인과 바꿔 앉으며 음주 사고를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사고 이후 4년이 지났지만 A 군은 여전히 오른 다리를 제대로 굽히지 못하고 머리에 큰 상처가 남아 있다. 온순했던 성격은 사고 이후 공격적으로 변했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A 군 부모는 한국의 현실에 분노를 느껴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도 도망가기 바쁜 사례도 많다. B 씨(32·여)는 2012년 10월 임신 8개월 상태에서 인도에 앉아 있다가 후진하는 음주 차량에 왼쪽 옆구리를 치였다. 사고 직후 진통이 느껴져 병원에 가보니 태아의 심박동이 감소하고 있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가해자는 사고 직후 달아나다가 시민들에게 붙잡혔지만 아기의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이유로 보상 과정이 지지부진해 B 씨는 아직도 피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음주운전을 하다 상해를 입히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30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피해자가 사망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지만 가해자가 중형에 처해지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김락환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회장은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고 부상만 입었다면 정식 재판에 넘겨지는 사례도 많지 않고, 재판을 치르더라도 ‘고의가 아니었다’ ‘이미 합의가 됐다’는 이유 등으로 가해자의 형벌이 낮아진다”며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권오혁 hyuk@donga.com / 조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