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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살순 없어” 7000km 탈출… 재탈북뒤 인신매매 당한 김연미씨

입력 | 2014-12-02 03:00:00

[채널A 개국 3주년 기획]국경 너머에도 천국은 없었다
시댁 냉대에 아들과도 생이별… “먼저 탈북한 어머니 찾고 싶어”




10월 24일 오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만난 탈북자 김연미(가명·24) 씨는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환한 표정이었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김 씨는 1997년 7세 때 부모님과 함께 북한을 탈출했지만 중국에서 살던 중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김 씨의 아버지는 보위부에서 받은 고문으로 숨졌다. 김 씨는 어머니와 함께 풀려났지만 아버지를 죽인 북한 땅에서 더는 살 수 없었다. 어머니가 먼저 국경을 넘었고 소식이 끊겼다. 홀로 남아 외할머니 집에서 살던 김 씨는 17세가 되던 2007년 목숨을 걸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하지만 김 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인신매매의 덫이었다. 탈북 직후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랴오닝(遼寧) 성의 한 농촌마을로 팔려간 김 씨는 곧바로 중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김 씨는 “어린 나이여서 인신매매인 줄도 몰랐다. 그저 강제 송환되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시외숙모에게서 “2만 위안(약 360만 원)에 사왔는데 다시 팔 수도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팔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냉대를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차에 자신이 팔려왔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김 씨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6세 아들이 눈에 밟혔지만 더이상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살 수는 없었다.

김 씨는 한국으로 간 탈북자들을 통해 탈북자 구호단체에 도움을 요청했고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를 만나게 됐다.

김 씨가 중국에서 비엔티안에 오기까지 이동한 거리는 7000km, 한 달 가까이 걸렸다. 김 씨는 10월 중국 랴오닝 성에서 출발해 라오스 접경지역인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까지 차로 열흘을 달렸다. 위기도 있었다.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 쿤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날에 도착하지 못한 것. 천 목사 측은 김 씨와 연락이 끊기자 구조를 포기하고 한때 철수하기도 했다. 어렵사리 김 씨는 천 목사와 다시 연락이 닿았고, 쿤밍에서 만나는 데 성공했다. 10월 23일 새벽을 틈타 라오스 국경을 넘은 뒤 10시간을 차로 이동하는 강행군 끝에 24일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김 씨는 다음날 천 목사와 함께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대사관으로 들어가기 전 김 씨는 “한국에 가면 강제 북송된 뒤 재탈북한 어머니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11월 중순 한국에 들어온 김 씨는 하나원에서 사회정착 교육을 받고 있다.

비엔티안=정동연 채널A 기자 ca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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