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개국 3주년 기획]국경 너머에도 천국은 없었다 시댁 냉대에 아들과도 생이별… “먼저 탈북한 어머니 찾고 싶어”
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김 씨는 1997년 7세 때 부모님과 함께 북한을 탈출했지만 중국에서 살던 중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김 씨의 아버지는 보위부에서 받은 고문으로 숨졌다. 김 씨는 어머니와 함께 풀려났지만 아버지를 죽인 북한 땅에서 더는 살 수 없었다. 어머니가 먼저 국경을 넘었고 소식이 끊겼다. 홀로 남아 외할머니 집에서 살던 김 씨는 17세가 되던 2007년 목숨을 걸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하지만 김 씨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인신매매의 덫이었다. 탈북 직후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랴오닝(遼寧) 성의 한 농촌마을로 팔려간 김 씨는 곧바로 중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김 씨는 “어린 나이여서 인신매매인 줄도 몰랐다. 그저 강제 송환되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한국으로 간 탈북자들을 통해 탈북자 구호단체에 도움을 요청했고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를 만나게 됐다.
김 씨가 중국에서 비엔티안에 오기까지 이동한 거리는 7000km, 한 달 가까이 걸렸다. 김 씨는 10월 중국 랴오닝 성에서 출발해 라오스 접경지역인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까지 차로 열흘을 달렸다. 위기도 있었다. 도중에 교통사고가 나 쿤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날에 도착하지 못한 것. 천 목사 측은 김 씨와 연락이 끊기자 구조를 포기하고 한때 철수하기도 했다. 어렵사리 김 씨는 천 목사와 다시 연락이 닿았고, 쿤밍에서 만나는 데 성공했다. 10월 23일 새벽을 틈타 라오스 국경을 넘은 뒤 10시간을 차로 이동하는 강행군 끝에 24일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김 씨는 다음날 천 목사와 함께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대사관으로 들어가기 전 김 씨는 “한국에 가면 강제 북송된 뒤 재탈북한 어머니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11월 중순 한국에 들어온 김 씨는 하나원에서 사회정착 교육을 받고 있다.
비엔티안=정동연 채널A 기자 ca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