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개국 3주년 기획]국경 너머에도 천국은 없었다 <上> 인신매매 신음하는 탈북여성들
채널A 특별취재팀은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중국 지린(吉林) 성과 라오스에서 인신매매 피해 여성 5명을 만나 이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취재했다. 리포트는 ‘채널A 종합뉴스’를 통해 3일까지 3회에 걸쳐 방송된다.
○ 인신매매 후 강제결혼… 돌아온 건 폭력뿐
탈북 여성 장미옥(가명·왼쪽), 김옥순(가명) 씨가 지난달 13일 중국 지린 성 옌지의 안가(安家)에서 채널A 취재진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98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지만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 남성과 결혼했다. 옌지=박연수 채널A 영상취재팀 기자
김 씨와 장 씨가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온 건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8년이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김 씨에겐 국경을 넘는 것만이 북한에 남은 노모와 자식을 부양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조선족 탈북 브로커는 김 씨에게 “중국에 가서 식당일을 하면 하루에 80위안(약 1만4000원)을 벌 수 있다”고 꼬드겼다. 브로커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자 또 다른 중국인 브로커가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말도 모르는 김 씨는 강제 북송에 대한 두려움에 그들을 무조건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며칠 뒤 도착한 곳은 식당이 아닌 시골 농가였다. 중국인 남편은 그를 5000위안(약 90만 원)에 사왔다고 했다.
매일같이 눈물을 쏟아내자 중국인 남편은 “도로 북한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 결혼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와 정신지체 장애인이 된 남편은 매일같이 김 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김 씨는 “남편이 머리채를 잡으면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질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남편의 대소변까지 받아야 했다.
한국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들이 눈에 밟혀 떠날 수가 없었다.
○ 강제북송 두려움에 매일 떨어
인신매매로 중국 농촌으로 시집을 온 탈북 여성들은 강제북송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장 씨도 김 씨와 마찬가지로 탈북 브로커에 속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장 씨는 “애가 두 살 되던 해에 도망치려고 했는데 살 방도가 없어 그냥 눌러 살게 됐다”고 말했다. 장 씨는 중국 공안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장 씨는 “지금도 마을에 낯선 차라도 들어오면 장롱 안에 숨는다”고 말했다.
지린 성 시골 마을에서 만난 박순희(가명·41) 씨는 2004년 탈북한 뒤 팔려 왔다. 조선족인 남편은 도박 중독자였다. 남편의 도박 빚으로 늘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박 씨는 “남편이 1년 전 돈을 벌어오겠다며 한국으로 갔지만 지금까지 보낸 돈은 한 푼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어 집에 있던 돈을 몽땅 가져간 적이 있었단 말입네다. 그런데 그래서 내가 부들부들 떨면서 공안에다 전화를 해 공안 차가 쌩 하고 왔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공안이 또 날 잡아가면 어쩝네까. 결국 이웃집 언니에게 사정을 말하고 산으로 숨었지요.”
한국에 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박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기서 죽을 생각을 백 번도 더 했지만 자식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네다. 큰애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선생님 칭찬이 자자해요. 제 유일한 희망이란 말입네다.”
옌지=김민찬 mckim@donga.com·정동연 채널A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