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듯 말 듯 그림자 같은 존재… 박 대통령에 정치적 부담 벌써부터 진실공방 난타전… 수사 중엔 어디서 무엇 나올지 청와대도 검찰도 예측 어려워 대통령 인사권 아래 있는 검찰… 국민 신뢰받는 수사 못하면 특검으로 가게 될 판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정 씨는 신문 인터뷰에서 “이 문건은 민정수석실에서 나를 음해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청와대 3인방과는 전화도 안 한다는 정 씨의 해명과는 달리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연락을 하고 지냈음이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인터뷰를 통해 드러났다. 비선(秘線)의 국정 개입과 관련해서도 정 씨와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당시 정윤회 문건을 홍경식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사람이 조 전 비서관이다. 검사 출신인 조 씨는 인터뷰에서 “정윤회 문건의 신빙성이 6할은 된다”고 말했다. ‘날조’와 ‘6할’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지만 한 달에 두 차례 열린다는 십상시 모임의 존재는 상식에 비춰 의문스럽다. 설사 정 씨가 개입을 했더라도 이렇게 촌스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정윤회 관련 사건 전담부가 된 듯하다. 정 씨가 시사저널을 고소한 사건, 산케이신문 명예훼손 사건, 이번 정윤회 문건 사건 등 3건이 모두 형사1부에 배당돼 있다. 검찰이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기소한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정 씨가 박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가 성립됐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정 씨는 문제의 시간에 서울 평창동 한옥에서 역술인을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씨는 역술인을 만났다는 보도에 자존심이 상한 듯 “점(占)을 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날 그가 만난 사람은 한학에 밝은 역술인으로 다수의 정재계 인사를 단골로 두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현직 대통령이 과거 의원 시절의 비서실장과 관련해 이렇게 곤욕을 치른 적은 없었다. 대통령의 인사권 영향 아래에 있는 검찰로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진상 규명을 하기가 어렵고 결국 특검이 발동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 씨까지 검찰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순탄하게 넘어가기는 어렵게 됐다.
정 씨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그를 보좌했다.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는 총재 비서실장이 됐다. 2004년 박 대통령이 복당해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그가 비서실장직에서 물러나고 현역인 진영 의원이 대표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나 야당이 최태민 목사의 사위라는 이유로 그를 공격하자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식 라인에서 빠졌다. 그리고 그에게는 공식 직함 대신 비선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인간적으로는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는 아내 최순실 씨와 이혼했지만 최 씨는 지금도 박 대통령과 만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검찰 수사가 공명정대하게 이뤄지면 억울한 누명이 깨끗하게 벗겨질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지만 수사를 하다 보면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청와대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방어를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 같은 그의 존재 자체가 박 대통령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도 진실 공방의 한복판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