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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선 오룡호 “침몰까지 4시간… 선사 탈출명령 왜 늦었나”

입력 | 2014-12-03 03:00:00

실종자 가족들 분노




“부디 살아 돌아오거라. 이게 네 어미의 마지막 소원이다.”

러시아 서베링 해에서 침몰한 명태잡이 트롤선 501오룡호(2187t) 선장 김계환 씨(47)의 어머니 장순애 씨(67·경남 고성군 고성읍)는 2일 자식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두 손 모아 빌었다. 장 씨는 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된 부산 서구 남부민동 사조산업 부산본부 5층 선원가족 대기실 한구석에서 죄인처럼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아들이 배의 최고 책임자인 선장이어서 30여 명에 달하는 다른 선원 가족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선장이 무리하게 작업하다 사고가 났다”는 일부 보도도 큰 부담이다.

선장 김 씨는 7월 10일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잘 다녀오겠습니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베링 해로 출항했다. 그는 1989년 통영수산전문대 어업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수산회사에서 근무하다 10년 전 사조산업에 입사한 중견 선장. 졸업 당시 3항사 자격증을 딴 뒤 한눈팔지 않고 2항사와 1항사를 3, 4년마다 취득한 성실한 선원이었다. 17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친의 뒤를 이어 성공한 어업인이 되고 싶어 했다. 출항할 때마다 만선의 꿈을 이뤄 어머니를 돕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사고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어머니 별일 없습니까. 저는 고기 잘 잡고 있습니다. 몸 건강하셔야 합니다”라며 전화한 게 마지막 대화였다. 어머니 장 씨는 “그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이틀째 실종자 가족들은 회사를 향해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나섰다. 가족들은 “사조산업 측이 노후한 배로 무리하게 조업을 시킨 것 아니냐”며 비난하고 있다. 또 가족들은 “배에 이상이 생기고 4시간 동안 탈출이 가능했는데도 선원들이 탈출하지 못했다. 선사 측에서 구체적인 탈출 명령을 내리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사고 수습에 나선 정부 재외국민보호 대책본부는 “선사인 사조산업이 선박 4척을 동원해 밤샘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실종된 선원을 추가로 찾지 못했다”고 2일 밝혔다. 러시아 선박의 지휘 아래 선박들이 4마일(약 7.4km)을 기준으로 4개 구역으로 나눠 수색했지만 초속 25m 정도의 강풍이 불고 파도도 6∼7m 높이로 일면서 추가 구조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 수색에는 미국과 러시아의 항공기와 구조함정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미국 해양경비대 소속 항공기(허큘리스)가 수색활동에 동참했다”며 “러시아 구조본부도 항공기(AN-26)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미국 알래스카 중간 지점인 사고 해역은 한국에서 2500해리(약 4630km)나 떨어져 있어 정부는 현재 미-러 양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응으로 보고 있다.

오룡호의 조난 신호는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안전본부 상황센터가 1일 오후 2시 6분 위성신호로 접수했다. 인근에 있던 선박들이 1시간여 만에 사고 현장에 도착해 구조를 시작했지만 파도가 높아 구조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조용휘 silent@donga.com·강성명 / 조숭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