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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기자의 그런거 野]86억이면 프로배구팀 2년 꾸리는데…

입력 | 2014-12-03 03:00:00

FA광풍, 터무니없이 올라간 몸값… 日은 9시즌 90승도 3년 56억원
2015년엔 김태균-김현수도 나오는데 적자 구단이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억’ 소리 나는 한 주였다. 자유계약선수(FA) 최정이 SK와 4년 총액 86억 원에 재계약했고, 롯데를 떠난 투수 장원준은 두산과 4년 84억 원에 합의했다. 삼성 윤성환(80억 원) 안지만(65억 원), SK 김강민(56억 원), LG 박용택(50억 원)을 포함하면 이번에 FA를 선언한 19명 가운데 4년에 50억 원 이상을 받는 선수만 6명이다.

▽80억 원에 사인한 삼성 윤성환의 계약금은 48억 원이다. 삼성의 올 한 해 입장 수입(64경기)은 48억7482만 원이다. 선수 한 명의 계약금으로 한 시즌 입장 수입을 통째로 준 셈이다. 최정과 장원준의 계약금도 40억 원 이상이다. 많은 사람이 ‘FA 대박’을 ‘로또 대박’에 비유하지만 실상은 로또와 비교도 안 된다. 최근 3차례 로또 1등 당첨금은 13억 원대였다. 확률 814만분의 1이라는 로또 1등에 세 번 잇달아 당첨돼도 40억 원이 안 된다.

▽입단할 때 직장 선택의 자유가 없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한곳에서 풀타임 9시즌(대졸 선수는 8시즌)을 채웠기에 그 정도 보상은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는 않다. 세금도 아니고 구단이 자기 돈 쓰는데 문제 될 것 없다는 시각도 있다. 문제는 국내 모든 구단이 모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당장 야구단을 운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보다 야구 시장이 훨씬 크고 흑자 구단이 존재하는 일본만 해도 FA 몸값이 우리처럼 높지 않다. 국내 프로야구의 관중 수는 일본의 3분의 1도 안 된다. 지바 롯데의 에이스였던 나루세 요시히사(29)가 최근 야쿠르트로 옮기면서 계약한 금액은 3년 6억 엔(약 56억 원)이다. 1년에 20억 원이 안 된다. 나루세는 9시즌 동안 90승 66패에 평균자책 3.16점, 1100탈삼진을 기록했다. 나루세와 같은 왼손 투수에 나이도 같은 장원준은 9시즌 동안 85승 77패에 평균자책 4.18점, 907탈삼진을 기록했다. 소화한 이닝 수도 나루세(1379와 3분의 2이닝)가 장원준(1326이닝)보다 많다.

▽임금의 하방경직성이라는 게 있다. 한 번 오른 임금은 경제 여건이 변해도 떨어지지 않고 그 수준 이상을 유지하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FA 몸값도 비슷한 것 같다. 선수들이 협상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자존심을 세워 달라”는 것이다. 지난해 강민호가 받은 75억 원은 올해 최정의 계약 때 기준이 됐을 것이다. 내년에는 최정의 86억 원이 기준이 될 것이다. 내년에는 한화 김태균, 두산 김현수 등 적어도 타격에서는 최정의 기록을 뛰어넘는 타자들이 FA가 된다. 이들의 자존심 값은 도대체 얼마가 될까. 86억 원이면 프로배구단 두 팀을 1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금액이다.

▽최근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도 국내외 경제 여건이 좋지 않아 긴축 경영을 하고 있다. 당장은 몇십억 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누적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프로축구만 해도 수도권의 인기 구단을 보유한 대기업 고위 인사가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줄 몰랐다. 앞으로 이러면 운영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의 야구 인기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만 성적이 좋으면 된다’는 식의 무모한 경쟁이 계속되면 프로야구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FA 대박’을 터뜨린 선수 가운데 계약 이전보다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몇이나 되던가. 향후 FA 시장에 나오는 선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미친 몸값’을 막기 위해 뭔가가 필요한 때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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