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다비드 칼리 글/세르주 블로크 그림·정혜경 옮김/40쪽·1만2800원/문학동네어린이
문학동네어린이 제공
인류 출현 이후 싸움은 누구나, 사소한 이유로, 각기 다른 구실을 들어 시작하곤 했습니다. 엇비슷한 상대방과 마주쳐 째려보는 눈빛, 비뚤어진 입꼬리, 음흉하게 곱씹는 생각들만으로도 조건은 다 갖춰지며 싸움의 불씨는 순식간에 타오릅니다. 자칫 심각할 수 있는 싸움의 상황들로부터 한결 힘을 빼고 한두 걸음 물러나게 만드는 힘이 블로크의 그림에 있습니다. 아이들 손끝에서 망설임 없이 빠져나온 듯 자유로운 펜 선이 편안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능청맞기까지 한 칼리의 글 역시 ‘싸움’이란 단어가 주는 긴장과 흥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자들의 공감의 폭을 넓혀줍니다. 우선, 싸움은 이래서 꼭 필요하답니다. 싸움은 팔다리 관절이 단련되고 혈액 순환이 촉진되어 산소 공급까지 원활해지는 완벽한 훈련이므로 다른 운동이 필요 없을 정도랍니다. 여기까진 꽤 진지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상대의 배를 조르는 그림 위에 위장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 수 있다고 말한 지점에서는 ‘어?’ 하며 배꼽을 잡게 만듭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