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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믿음과 광기와 이성 사이 ‘神의 발자취’

입력 | 2014-12-06 03:00:00

◇신의 탄생/프레데릭 르누아르,/마리 드뤼케르 지음·양영란 옮김/340쪽·1만6000원·김영사
역사 철학 사회학 분야 넘나들어… 주요 종교 교리 알기쉽게 풀어내




신은 원래 존재한 것일까, 인간의 손에 의해 탄생한 것일까. 절대자의 근원에 대한 물음은 늘 종교의 화두였다. 저자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각 종교의 기원과 교리 형성을 다양한 역사적 증거를 바탕으로 상세히 보여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일부분. 동아일보DB

어느 날 비구 말루캬푸타가 붓다에게 신과 우주, 세계의 근원에 대해 묻고 “이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하면 떠나겠노라”고 했다.

붓다는 이런 우화를 들려줬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는데 치료 받기 전에 화살을 쏜 궁수 이름과 계급, 화살을 쏜 거리, 화살을 만든 나무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 우화는 절대자의 본질을 성찰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구원을 원하는 자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불교는 유일신을 모시는 종교와는 달리 신과 세계의 창조 등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인간의 실존적인 고통을 구제하는 데 더 관심 있는 종교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종교역사학자와 언론인의 대담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이처럼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등 세계 주요 종교의 교리는 물론이고 탄생의 역사, 종교 간 비교, 무신론, 종교의 광기 등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종교는 물론 역사 철학 사회학 분야를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감탄스럽다.

저자는 스스로 그리스도교인이라고 밝히면서도 비판적 시각에서 종교에 접근한다. 특히 역사적 증거를 다양하게 들이대며 특히 성경 꾸란 등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적 주장을 반박한다.

모세가 홍해의 기적을 연출하며 60만 명의 히브리인을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이끌고 간다는 출애굽이 과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었는지에 의문을 던진다. 당시 이집트인의 역사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시시콜콜한 사건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겼는데 유독 출애굽에 대해선 어떤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출애굽이 굉장히 소규모로, 이집트 파라오도 모르게 떠났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또 여호수아 일행이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7번씩 돌자 성이 무너졌다는 시점도 여리고 성이 이미 이집트인에게 멸망한 지 2세기나 지난 때였다는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제시한다.

유일신의 모태라고 알려진 유대교는 기원전 7세기∼기원전 5세기 무렵에야 유일신 이론을 정립했다. 이는 유대인들의 바빌로니아 유배 시절 조로아스터교를 접하면서 그 이론을 수용한 결과였다. 또 이슬람교의 경우에도 무함마드가 7세기 종교를 창시할 때 꾸란의 내용을 하나님에게 직접 받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꾸란이 8세기부터 순차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영향을 듬뿍 받았다는 것을 여러 판본의 비교를 통해 보여준다.

신의 이름을 내건 폭력과 살육의 역사, 18, 19세기부터 유럽에 불기 시작한 무신론의 바람, 1963년 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한 가톨릭교회의 변화 등을 종횡무진 짚으며 종교의 역사와 그 변화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미래의 신은 어떻게 될까. 저자는 신이 인성을 겸비한 신(의인화된 신)에서 인성과는 무관한 신으로, 교리를 말하는 남성적인 신에서 사랑과 보호를 중시하는 여성적인 신으로, 신자의 외부에 있는 신에서 신자의 마음속에서 만날 수 있는 신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신과 종교에 대해 책의 마지막 장, ‘대담을 마치며’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세기 동안 인류와 인식의 진보를 저해하는 주요 장애물 중 하나는 신앙 혹은 신앙의 부재가 아니라 교조주의적 확신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