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우아하게 90초… 100m 전력달리기 한듯 숨이 헉헉

입력 | 2014-12-06 03:00:00

[토요 트렌드]발레의 실용적 변신




거울 앞에 선 여성들이 발레 동작을 하고 있다. 몸을 탄탄하게 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발레는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발레 지도를 받고 있는 서지혜 씨(오른쪽 사진 오른쪽)와 그를 지도하고 있는 이현진 지니발레아카데미 원장. 지니발레아카데미 제공·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화려한 조명을 받고 무대에 선 발레리나가 따로 없다. 홀의 거울 앞에서 바를 잡고 1, 2, 3, 4, 5 포지션(발레 서기의 기본 동작)으로 숨고르기를 한 뒤 발을 이쪽저쪽으로 들어올리고 포르 드 브라(Port De Bras·팔의 움직임)를 하면서 발레에 흠뻑 빠지면 무대 위의 백조가 부럽지 않다.

서지혜 씨(37·서울 연희초교 교사)는 요즘 발레에 빠져 보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한 마리 백조가 돼 1시간 넘게 홀을 누비다 보면 학교에서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쌓인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간다.

발레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과거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등 고상한 작품들 탓에 일반 국민들이 선뜻 다가서기 힘들었지만 최근에는 여성들이 다이어트와 예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발레의 실용적인 변신’이다. 성인이나 어린아이들 모두 다이어트는 물론이고 척주만곡과 밖굽이무릎(O다리), 거북이 어깨 등 기형인 몸을 바로잡는 데도 좋은 수단이 되고 있다.

서 씨는 2012년 9월 발레와 처음 만났다. 그동안 수영과 요가, 필라테스, 헬스, 검도 등 다양한 운동을 해봤는데 운동은 되지만 깊은 재미를 주지 못했다.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때 발레를 만났다. 그동안 발레는 발레리나, 발리리노 등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발레학원을 찾는 일반 여성들이 많았다. 거울을 바라보며 동작 하나하나를 봐가면서 발레에 빠지다 보면 자신에 대한 사랑도 커졌다. 클래식 음악에 맞춰 연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름답게만 보였던 것과 달리 운동량이 상상을 초월했다. 발레를 시작하고 3kg 정도 살이 빠졌다. 서 씨는 “체중 감량은 숫자에 불과하다. 몸이 탄탄해지고 균형이 잡힌다. 힘도 생긴다. 힘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동작이 많다. 1시간 넘게 발레 동작에 집중하면 온몸에 땀이 흐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자세가 좋아졌다. 과거 의자에 앉을 때 등이 구부정한 자세였는데 이젠 곧고 편하게 앉는다. 걸음걸이도 반듯해졌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었는데 이젠 오래 걸어도 거뜬하다.

2000년대 초부터 일반 성인 발레 클래스를 운영하기 시작한 이현진 지니발레아카데미(서울 마포구 동교동) 원장(36)은 “발레가 주는 효과가 다양하다. 이젠 일반 여성들도 쉽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다”고 말했다. 지니발레아카데미엔 성인만 200명이 넘는다. 주로 20, 30대이고 40, 50대도 있다. 이 원장은 “발레는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힘이 많이 든다. 발레를 하는 동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힘을 줘야 한다. 헬스의 5∼10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발레는 ‘발끝으로 서서 추는 춤’이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물리학 용어를 빌리면 지표면으로 떨어지는 속성인 ‘중력’을 부정하는 춤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바로 발끝으로 서는 것이다. 그러나 중력의 영향을 받는 인간에게 공중을 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잠시나마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연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힘들다. 발레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근력, 그리고 심폐지구력 등 체력이 균형 있게 발달돼 있어야 한다.

올해 대한무용학회가 발표한 연구 자료 ‘여자대학생의 발레 작품 수준에 따른 운동 강도 및 에너지 소모량 연구’에 따르면 발레의 운동량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레를 전공한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3가지 작품의 부분 동작으로 실험을 했다. 하나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 3막 중 오로라공주 바리에이션, 둘째 라 바야데르 2막 중 감자티 바리에이션, 셋째 탈리스만 중 여자 솔로 부문으로 각 1분 30초 동안의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했다. 3가지 모두 토슈즈를 신고 발을 쓰는 포즈와 점프 동작이 많다. 오로라공주 바리에이션은 1분당 체내 에너지 소비량이 10.40Cal(몸무게 50kg 기준)였다. 감자티 바리에이션은 12.12Cal, 탈리스만 여자 솔로는 11.31Cal를 소비했다. 세 작품 모두 막바지에 분당 최대 심박수가 160개를 넘었다. 여대생들이 20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분당 10Cal를 넘게 소비한다는 것은 고정식 자전거를 매우 힘든 강도로 타는 것과 맞먹는다는 뜻이다. 분당 최대 심박수가 160개가 넘는다는 뜻은 100m를 전속력으로 달리듯 최대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뜨고 있는 드라마 ‘미생’의 안영이 역의 탤런트 강소라 씨는 발레 다이어트로 20kg을 감량했다고 알려져 있다. 음식 조절도 있지만 꾸준히 발레를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탤런트 최지우 씨와 한가인 씨도 발레로 몸매를 가꾸는 연예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 초반부터 일반 성인 발레 참여자들이 많아지면서 국내 최고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에서도 성인 클래스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발레 전문가들이 밝히는 성인 발레의 장점 중 하나가 부부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엄청난 운동량으로 날씬한 몸매를 갖추는 것은 물론 온몸의 근육이 섬세하게 발달하게 돼 부부 관계의 만족도까지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서 씨가 얻은 것은 균형 잡힌 몸매만이 아니다. 발레를 통해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됐다. 그는 지난해 초 지니발레아카데미 주최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중독’이란 공연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발레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공연 준비를 시작해 코펠리아의 군무를 배워 무대에 섰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나도 발레리나’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됐고 여럿이 무대에서 함께하면서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발레 기술 습득에 이어 작품을 배우고 무대에 서면서 ‘또 다른 나’를 찾게 됐다.

무대는 사람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키운 실력을 한껏 뽐내고 나면 자신감이 커진다. 혹 실수를 한다면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는 반성의 기회를 준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일반인의 발레 공연은 남과 구별되는 특별한 느낌을 갖는 기회이다. 새로운 것을 배워 발레의 주인공이 됐다는 성취감과 짜릿함 등 내적 즐거움이 커진다. 당연히 자존감과 자신감도 커진다”고 말했다.

서울 예원중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이연우 양(14)은 올 초 학교에서 실시한 신체검사 결과 척추측만증으로 나와 교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왼쪽 어깨 위에 바이올린을 올려놓고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면서 어느 순간 척추가 왼쪽으로 휘었고 고개도 왼쪽으로 경도돼 있었다. 그래서 8월부터 집 근처인 경기 파주의 발레학원을 찾았다. 이성숙 메디시스발레아카데미 원장(44)은 “처음에 왔을 때 척추와 머리가 왼쪽으로 휘었고 골반이 뒤로 빠져 있었다. 바이올린을 하기에 어색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양은 스트레칭 위주의 발레 플로어 동작을 주 1, 2회씩 개인 레슨을 받았다. 바이올린 연습과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1시간 30분 동안 집중적으로 레슨을 받고 틈나는 대로 개인 연습을 하는 식으로 했다. 이제 3개월이 좀 넘었는데 목과 허리가 많이 곧아졌다. 무엇보다 바이올린 동작이 우아하게 나온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양은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꼈는데 선생님들이 바이올린 동작이 아주 좋아졌다고 말한다”며 웃었다. 이 양은 발레를 시작한 뒤 5kg이나 빠져 다이어트 효과도 톡톡히 봤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한 남학생도 발레로 새 인생을 살게 됐다. 실력은 좋았지만 자세가 엉성해 예원중 입학에 실패한 뒤 발레를 배우고 다시 도전해 합격한 것이다. 이 학생은 지나치게 허리가 앞으로 숙여져 있고 어깨가 뻣뻣해 구부정한 자세였는데 심사위원들이 “그래 가지고 제대로 피아노 치겠느냐”며 탈락시켰다. 이 학생은 1년간 발레로 몸을 균형 있게 만들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발레 플로어 동작은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절해 자세를 바르고 곧게 만들어준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최근 학업 및 생활 자세 불량으로 남녀 어린이들의 몸이 기형화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흔한 예가 안짱다리와 O다리, 등 굽음, 척추만곡 등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이런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형을 미리 잡아주지 않으면 평생 어색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최근 멋진 몸매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미리미리 아이들의 자세를 잘 잡아주는 수단으로 발레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24)도 발레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겨스케이팅을 할 때 한쪽 다리로 점프를 많이 할 경우 골반이 틀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발레로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발레는 플로어(Floor) 워크와 스탠딩(Standing) 워크로 구분해 기본을 가르친다. 플로어는 말 그대로 바닥에 앉아 하는 동작으로 쉽게 설명하면 스트레칭과 비슷하다. 요즘 ‘발레 스트레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스트레칭은 근육을 늘려주는 것에 초점을 두지만 발레 플로어 워크는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을 더 세밀하게 조정해주는 동작이 많다. 안짱다리와 O다리는 플로어 동작을 3, 4개월만 하면 효과를 볼 수 있고 완전히 교정하기 위해서는 2년 정도 걸린다. 자세를 완전히 잡아주지 않으면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간다. 스탠딩 동작은 바(Bar) 워크와 센터(Center) 워크로 나뉜다. 바 워크는 고정된 바를 이용해 하는 동작이고 센터 워크는 아무 도움 없이 직접 발레를 하는 동작이다.

이성숙 원장은 “발레가 다이어트와 몸매 교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질은 예술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수백 년간 이어온 고전 발레의 숨결을 느끼며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발레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