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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신석호]워싱턴의 ‘분단 저널리즘’ 토론회

입력 | 2014-12-08 03:00:00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북한의 3대 세습 지도자 김정은이 돌연 공개 석상에서 사라져 그의 행적을 놓고 국제사회의 추측이 분분하던 올해 9월 말. 미국 뉴욕에 사무실을 둔 한 중화권 매체가 북한 내 쿠데타와 김정은 연금설을 보도해 잠시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이름도 처음 듣는 이 매체는 중국어로 “북한 내에서 정변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김정은이 연금 상태에 놓였다. 이번 정변은 황병서 등이 주도한 것이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북한의 2인자가 된 그는 김정은을 대신해 합법적으로 서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통일부와 외교부를 출입하면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북한 기사를 쓰고 있을 때 가장 고된 업무의 하나는 국내외의 다양한 매체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는 북한 기사의 진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맞건 틀리건 지르고 보는 북한 기사 쓰기 관행에 ‘분단 저널리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그 원인과 극복 방법을 논하는 책까지 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뉴욕 특파원에게 맨해튼의 사무실에 가 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소에 적힌 사무실은 달랑 오피스텔이었고 그나마 기자들은 없고 회계와 총무 일을 본다는 직원 한 명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특종 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이 직원은 e메일을 보내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이쯤에서 추적을 그만뒀다.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북한 기사를 많이 쓰지도 않고 무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끔 북한 관련 소식은 ‘미디어 안보 상업주의’의 소재가 된다. 지난해 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떠들어댔을 때 마치 전쟁이 날 것처럼 확성기를 튼 매체는 CNN이었다. ‘공갈’이라며 점잖게 무시하던 워싱턴포스트(WP)와 크게 다른 태도였다.

5일 오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북한 보도: 도전과 문제, 함정’이라는 도발적인 주제로 한미 언론인 공동 세미나가 열린 것은 양국의 북한 연구 학계와 언론계가 이런 현상에 공통적으로 우려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세미나는 미국의 냉전사 연구기관인 우드로윌슨센터와 한국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북한대학원대가 공동 주최한 2014년 워싱턴 포럼의 한 세션으로 마련됐다.

이번 행사의 미국 측 기획자인 윌슨센터 제임스 퍼슨 역사·공공정책프로그램 부소장은 “김정은이 공개 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40일 동안 일부 언론과 매체들이 보인 행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마치 사실인 양 확대 재생산하는 전문가들의 폐해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다섯 명의 한미 양국 기자는 한목소리로 ‘관심은 많은데 정보는 적은’ 북한 보도의 구조적 환경에서 사실과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행사의 한국 측 좌장인 선준영 경남대 석좌교수(전 유엔대사)도 “북한에 대해 같은 사실을 놓고 성향이 다른 매체들이 상반된 보도를 하는 행태도 문제”라고 말했다.

기자도 패널로 참석해 ‘분단 저널리즘’을 극복하는 열 가지 방법론을 소개했다. 작은 정보를 교차 확인하는 과정에서 더 큰 정보를 얻고 전 세계 문서고에서 옛 북한 외교문서를 찾아 잊혀진 진실을 찾아내는 등 객관적 사실 확인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통일이 되면 ‘분단 저널리즘’도 사라질 것이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독자와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 통일을 위해 우선 ‘분단 저널리즘’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