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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잊지 못할 말 한마디]사람이 울면서 살 수는 없다

입력 | 2014-12-08 03:00:00

이스라엘 원로 조각가 미하 울만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훔볼트대학 맞은편, 국립오페라극장과 과거 대학도서관 건물 사이에 광장이 하나 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 광장을 특별한 장소로 만드는 것은, 광장 한복판의 유리 바닥 아래로 들여다보이는 지하 공간이다. 수천 권의 책이 들어갈 책장이 빼곡히 둘러서 있는 이 하얀 방에는 책이 한 권도 없다. 그것은 사라진 책들을 위해 영원히 비워 놓은 기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1933년 5월 바로 이 광장에서 나치당원들은 ‘비독일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고 지목된 2만 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끌어내 불태웠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 토마스 만 같은 이들의 책들이 화염 속에서 불타오를 때 대학생들은 나치 구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참혹한 나치독일 역사의 서막이자, 독일 지성사에 메울 수 없는 공동(空洞)으로 남게 된 사건이었다. 이 기념공간의 안내판에 적혀 있는 경구,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우게 될 것’이라는 시인 하이네의 예언은 아우슈비츠에서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기념비로서 이것은 파격적인 작품이다. 군중 앞에 우뚝 서서 열정적으로 어떤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비워내고 침묵함으로써 보는 사람을 깊은 묵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계 유대인인 이스라엘 원로 조각가 미하 울만의 작품이다.

나는 유학 시절 슈투트가르트 미술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나이 차가 16년이나 되는 교수와 학생 사이였지만, 그는 늘 격의 없는 친구처럼 진지한 대화 상대가 돼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베를린의 기념공간 프로젝트를 초기 단계부터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내 지도교수는 아니었지만, 내 미술작업이 지금의 틀을 갖춰가던 1990년대 초에 가장 중요한 멘토였고 작가적 모범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울면서 살 수는 없다.”

내 작업을 놓고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이 짧고 분명한 말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 전체에 대한 논평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독일과 한국의 역사적 시차를 넘어 낯선 환경에서 미술작업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한국에서는 대학생들의 분신과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이라크와 유고슬라비아와 세계 곳곳에서의 살육과 파괴는 끝이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술가가 되겠다고 뒤늦은 유학생이 된 나는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당시 내 미술작업은 하나같이 상복(喪服)처럼 어둡고 무거웠다. 그래서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투정하는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인생의 시간을 애도와 한탄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것…. 베를린에 있는 그의 기념공간이, 광기와 폭력의 역사 앞에 웅변이나 통곡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돌보다도 무거운 침묵으로 맞서고 있듯이, 고통과 슬픔의 합계가 줄어들지 않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울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워야 했다.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