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스홉킨스 병원의 어린이 병실. 사진 출처 병원 홈페이지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필자도 환자의 죽음과 관련된 수많은 경험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환자의 죽음은 가족의 것이기도 하지만 의사의 것이기도 하다. 이 아픔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후회와 회한이 없도록 성찰에 성찰을 거듭하는 것이다. 수술 전날 정신과 육체를 정갈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예방 가능한 사고였는데도 막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미숙함이나 실수는 없었는지, 과욕을 부려 무리한 점은 없었는지, 가족들과 공감은 충분했는지, 똑같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한 공부와 각오는 충분히 했는지 등등에 대한 고통스러운 질문을 하면서 다시 수술대에 오르는 용기를 얻게 된다.
이번에 사망한 신해철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진정성 있는 해법이 강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다. 우선 의사와 병원 시스템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수술 후 환자가 제대로 잘 적응했는지,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도록 수술 방법은 잘 선택되었는지, 수술 후 환자에게 예기치 않았던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제때에 적절한 검사와 조치가 이뤄졌는지, 이 모든 것을 환자와 가족들이 공유했는지 등등을 점검하는 것이다. 사전에 이런 지침들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번 경우에도 경고등이 번쩍거렸을 때가 여러 번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환자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세계 제일로 평가받는 존스홉킨스 병원의 ‘조시’ 이야기는 안전한 병원이 되기 위해서 병원들이 얼마나 솔직해야 하고 얼마나 강한 실천 의지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지, 또 투자가 있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 ‘존스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Safe Patients, Smart Hospitals·청년의사·2010년)’에 나오는 조시라는 이름의 아이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여느 막내와 마찬가지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목욕물에 전신 화상을 입는다. 다행히 적시에 응급실에 도착해 명문 병원이 제공하는 훌륭한 화상 치료 덕에 퇴원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탈수 패혈증 등이 겹쳐 목숨을 잃고 만다. 책은 존스홉킨스 병원조차도 의료진 사이는 물론이고 일반 근무자들과 전문 의료진 간의 의사소통이 부족했으며,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이미 있었는데도 이를 실천할 가이드라인이 있는지조차 아는 의사가 별로 없었음을 드러낸다.
병원은 결국 현실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혁신을 시작한다. 다양한 진료지침 구축과 환자 안전수칙 실천을 향한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병원의 노력에 감동한 ‘조시’의 가족들은 환자 안전의 전도사가 되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했다.
필자는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반성과 제언을 하고 싶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의료서비스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창작 활동이다. 우선 환자를 병이 달린 불량제품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의사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 자기 성찰과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또 환자와 가족들도 이런 의사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병원들은 꺼진 불도 다시 보는 마음으로 제도와 규칙을 쉼 없이 갈고닦았으면 좋겠다.
국가도 의료기관 인증제, 임상진료지침 구축, 의료사고 판단 시스템 고도화, 공평하고 합리적인 보상제도 도입 등에 신경을 더 써 주었으면 좋겠다.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나 병원을 위한 보험제도의 도입은 시급하다. 언론도 시청률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근거 중심의 고품격 안전 의료서비스를 찾는 노력에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