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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칼럼]실세 논란, 부정만 하고 말 일 아니다

입력 | 2014-12-09 03:00:00

총리 장관 수석은 안 보이고 늘 ‘실세 3인방’이 화제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을 할수록 심부름꾼인 비서들 힘은 커져
萬機親覽식 국정운영 그만… 각 부처에 일을 돌려줘야 실세 시비 줄일 수 있어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청와대 비서관에 행정관, 그리고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 등 대통령 주변 측근 비서그룹 안팎의 갈등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 문건공방에 진실공방, 안 봐도 빤하다. 충성경쟁에 ‘쪼가리 권력’을 향한 힘겨루기다.

싸움 그 자체를 욕할 생각은 없다. 권력이 권력이고 사람이 사람이라 어디서든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군들 권력을 앞에 두고 뒤로 물러나겠는가.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실제로 측근 비서들이 치고받는 일은 정도의 차이일 뿐 어느 정권에서나 있다. 정권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일이기도 하다.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이나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 자리를 놓고 격돌하곤 한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 이런저런 문제를 놓고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늘 있는, 그렇고 그런 싸움. 그럼에도 이번의 경우는 참 답답하다. 여느 때와 달리 온 국민의 관심을 끌어당기면서 일파만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로 인해 대통령을 비롯해 갈 길 바쁜 우리를 모두 그 속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나. ‘문고리 권력’ 등 이들 측근 비서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정권의 경우 이들에 대한 관심은 정권 초기 잠시 커졌다가 곧 줄어들었다. 장관이나 비서실장 등 공식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쓰게 되면서 이들의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다르다. 집권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총리도 장관도, 그리고 심지어 청와대 수석들도 힘을 쓰는 것 같지 않다. 국민도 그들의 움직임에 별 관심이 없다. 비서실장과 경제부총리 정도가 한 번씩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도이다.

반면 총무비서관을 비롯한 ‘실세 3인방’은 늘 화젯거리다. 권력이 이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다. 진위를 알 수 없는 문건 하나까지도 말이다.

앞으로가 더 큰일이다. 이번 일로 ‘실세 3인방’ 소문을 더 믿게 됐다. 이제 어떡할 것인가? 얼마나 더 3류 주간지에나 나올 법한 측근 비서들의 활극을 봐야 하나? 또 얼마나 더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그 속에 갇혀 있어야 하나?

대통령은 억울하다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실세가 될 만한 권한을 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주변 비서들은 그저 충실한 심부름꾼이고, 다른 누구는 최근 만난 적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누가 한 말이냐. 역대 대통령들이 ‘실세 논쟁’이 있을 때마다 했던 말이다.

그러나 틀렸다. 그건 그렇지 않다. 측근 비서들이 실세가 되는 것은 대통령이 권한을 줘서가 아니다. 대통령 자신이 직접 꼼꼼히 챙길 수 있는 이상의 일을 할 때 이들은 저절로 실세가 된다. 즉 대통령과의 관계만으로도 대통령을 돕고 있다고 소문이 난다. 직접 수발을 들거나 심부름까지 하게 되면 그 힘은 상상 이상으로 커진다.

때로 오해도 일어난다. 심부름하는 자가 대통령의 이름으로 자신의 민원을 집어넣기도 하고, 또 이를 전달받은 자가 똑같은 짓을 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하나, 측근의 둘이 현장에 가서는 열 개가 된다. 또 때로 저절로 진행된 ‘자연 뻥’도 실세가 하고 대통령이 한 것이 된다. 그 결과 실세는 더욱 실세가 되고, 대통령은 국정의 부스러기까지 죄다 챙기는 사람이 된다.

해결책은 하나다. 대통령이 하고 있는 일을 대거 책임 있는 자리로 돌려보내야 한다. 당장에 인사부터 직접 꼼꼼히 챙길 수 있는 것만 해야 한다. 나머지는 장관이 됐건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됐건 확실히 돌려보내야 한다. 대통령은 큰 틀을 제시한 후 평가만 하면 된다. 측근 비서들이 끼어들어야 하는 부분을 확 줄이라는 말이다. 시스템이란 게 딴 게 아니다. 이게 바로 시스템이다.

어떤 조직이든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이상의 일을 손에 쥐고 있으면 사고가 난다. 실세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주변 측근들이 필요 이상의 힘을 가짐으로써 권력과 권한이 왜곡돼 행사되기 때문이다.

‘실세 3인방’을 내보내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소문이라 부정만 하고 말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일을 하는 방식과 틀이다. 어찌 보면 이번에 거론되는 모든 사람이 이 잘못된 방식과 틀의 희생자일 수 있다. 방어하고 부정하기에 앞서 이 모든 문제가 어디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