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식도락]⑥KDB아트스페이스 신형섭전, 쉐 조세피나의 이베리코 등심
깨지는 재료(유리) 이미지를 잘라 붙일 수 있는 재료(종이)로 구현한 신형섭 작가의 ‘planned accident’(위쪽 사진). 실물을 뒤에서 뜯어보기 전에는 얼개를 짐작하기 어렵다. ‘쉐 조세피나’의 이베리코 등심 역시 한 입 베어 물 기 전엔 넘겨짚기 어려운 맛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작품과 작가의 속내가 불편한 마음을 가셔냈다. ‘planned accident(계획된 사고)’라는 표제 아래 엮은 작품 24점은 얼핏 모두 ‘총 맞아 깨진 우윳빛 반투명 유리’를 연상시킨다. 재료를 툭 쳐 깬 뒤 고착시켜 걸어놓은 윤곽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다가가 뜯어보니 비정형을 가장한 정형이다.
표피 재료는 수채화 용지다. 인터넷에서 ‘총 맞은 유리가 깨진 모양’을 찾아 그린 뒤 칼로 쪼갰다. 건축모형 재료인 폼보드로 표피 뒤 굴곡의 뼈대를 만들고 공업용 접착제로 붙였다. 깨지지 않는 재료를 잘라 붙여 깨지는 재료의 순간적 이미지를 붙든 것. 18년간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다 올해 홍익대 조교수로 초빙된 신 씨는 재료의 성질로부터 얻은 아이디어에 치밀한 수공을 더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베리코 스테이크는 바짝 익히지 않는다. 약한 불 그릴에 7분 정도 올려 육즙과 식감을 살린다. 썰어낸 중심에 붉은 기가 감돈다. ‘돼지고기가 설익었다’고 항의하는 손님에겐 한 번 다시 권한다. “일단 맛을 보시라”고.
오 셰프는 유학파 요리사가 아니다. 식당에서 일한 모친 어깨 너머 익힌 솜씨를 군 복무 중 주방에서 확인하고 생업 현장에 뛰어들어 새우 머리 다듬기부터 시작했다. 자질을 인정받아 20대 중반에 이태원 유명 레스토랑 셰프로 발탁됐다. 말투는 둥글지만 요리에는 날이 서 있다. 설치작품 재료에 어울리도록 담당 공무원을 끈덕지게 설득해 육교 도색을 바꿔버리기도 한 신 작가의 허허실실 고집과 닮은꼴이다.
북어와 토끼털을 어색함 없이 기워 붙여내는 신 작가의 ‘재료탐험’이 한층 더 펼쳐놓고 드러날 다음 전시가 기다려진다. 갤러리 측은 “증권사 용무 없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후 5시 직전에 찾아왔다간 “근무시간 끝났으니 어서 나가라”는 WMC 창구직원의 재촉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