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위원회가 내놓을 방안은 교육부 ‘2004년 수능개선안’을 크게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그때도 수능 출제위원을 다변화하고 문제은행 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발표됐다. 문제는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위원회가 새로운 개선안을 내놓고 정부가 밀어붙이면 수능은 안정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능이 안정화돼도 교육은 결코 정상화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한민국에서 수험생을 대학에 진학시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능 체제에 넌더리를 낸다. 입시경쟁이 치열해서가 아니다. 수능이 갖는 ‘줄 세우기’와 ‘운칠기삼’ 본성 때문이다. 문항 오류에 나라가 들썩이는 것도 출제 자체보다는 입시의 수능 의존도가 커서 생기는 현상이다. 올해는 특히 수능 만점자도 서울대에 가지 못하는 소위 ‘수시 납치’를 당하고, 변별력을 상실한 문제로 상위권 학생들이 재수학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현 체제에서는 원하는 학생을 고를 수 없는 대학도, 시험 당일 컨디션이나 시험 난이도에 따라 점수가 결정되는 학생도 모두 패배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불’ 가운데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금지는 깨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주로 특목고 학생에게 유리한 특기자 전형은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이나 다름없고 구술면접은 사실상 본고사다. 정부와 대학도 이를 알면서도 커밍아웃을 못할 뿐이다. 일각에서 수능을 쉽게 출제해 등급제를 폐지하고 ‘자격시험화’하자는 말이 나오지만 대학에 입시의 자율성을 주지 않는 한 이 또한 근본적 해결책이 못 된다.
정부가 본고사를 막는 명분은 사교육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본고사를 허용해도 포화 상태에 이른 사교육비는 더 늘어나기보다는 수능 사교육이 사라지는 구조조정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대학별 고사로 인한 실익은 엄청나다.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미리 정하므로 정부가 주창하는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에 도움이 된다. 대학들은 건학이념과 전공에 따라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다.
다만 이 대학별 고사는 70년대식 본고사와는 달라야 한다. 소위 명문 대학들이 정상적 교육과정에서는 도저히 풀기 힘든 문제를 내고(그것도 대부분 일본 것을 베꼈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학교 위상이 올라가는 것처럼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본고사는 안 된다. 21세기를 이끌어갈 창의적 인재를 뽑기 위해선 대학들이 정답이 없는 열린 문제, 독창성을 평가하는 창조적 문제를 내야 한다. 해마다 대학들이 창조적 문제를 내기 위해 경쟁하면 학생들의 창의성이 계발되고 사교육은 무력화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지만 정말 철폐해야 할 규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수능 오류 파문을 보며 규제 중의 규제인 입시 규제부터 단두대로 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