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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짧은 소설]우리에겐 1년, 누군가에겐 7년

입력 | 2014-12-10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기호 소설가

땅은 잘 파지지 않았다. 삽날이 언 땅을 때릴 때마다 둔탁한 쇳소리가 어두운 전나무 군락지 너머로 길게 퍼져 나갔다. 밤은 깊었고 무릎을 스치는 한기는 더더욱 뾰족해져 갔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나는 삽질을 하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남양주에서 부천으로, 그리고 다시 차를 몰아 선산이 있는 경기도 가평에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의 일이었다. 일을 아무리 일찍 마무리한다고 해도 새벽 네 시는 되어야 끝날 텐데… 내일도 어김없이 여덟 시 반까지는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힐끔힐끔 아버지 산소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마치 오래된 비석처럼 아무 말 없이, 거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네가 부천으로 건너와야겠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것은 퇴근 후, 막 집에 도착했을 때였다. 월말에다가, 분기 사업 실적 보고서까지 겹쳐 몸과 마음 모두 세탁기에 넣어놓고 오랫동안 돌리지 않은 빨래처럼 후줄근해진 상태였다. 나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싶었고, 바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호했다.

“오늘밤 안에 보내주고 싶구나.”

나는 하마터면 어머니에게 ‘쓰레기 종량제 봉투’ 이야기를 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전문업체를 알아보겠다는 말도, 주말에 가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든 채 말없이 서 있다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동을 걸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남양주에서부터 어머니가 홀로 살고 있는 부천까지는 한 시간 반 남짓 걸렸다. 부천에서 가평까지는 두 시간이 더 걸릴 텐데, 선산이라, 선산이란 말이지…. 죽은 개를 꼭 선산에 묻어야겠다는 말씀인 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끙, 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핸들을 돌렸다. 외곽순환도로는 역시나 꽉꽉 막혀 있었다.

어머니와 십육 년을 함께 산 몰티즈 ‘봉순이’의 몸이 예사롭지 않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작년 이맘때쯤부터였다.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눈가 주위가 벌겋게 변해 가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올여름 어머니 생신 때 가 보니 치매기가 역력했다.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고, 베란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고 넘어지는가 하면, 사료를 먹고 토하고 또 사료를 먹는 일을 반복했다. 관절염 때문에 예전처럼 소파 위로 올라오지도,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한다는 말을 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묘하게도 ‘봉순이’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때부터 내 불안은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사실 ‘봉순이’를 처음 애견 매장에서 분양받아 어머니 품에 맡긴 것은 나였다. 환갑이 되자마자 간암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의 빈자리를, 나는 그런 식으로 메우려 했다. 남양주에 막 신혼집을 꾸린 것도 그때였고, 아무래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으니까. 아버지의 자리를, 아들의 자리를 ‘봉순이’가 대신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봉순이’는 훌륭히 그 역할을 해 나갔다. 그런 ‘봉순이’가 세상을 뜬 것이었다. 그러니… 법규에 나온 대로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사체를 처리하라는 말을, 그 얘기를 차마 꺼내진 못한 것이었다.

그럭저럭 구덩이의 형태를 갖춰갈 때쯤 등 뒤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흘 전쯤에 말이다… 봉순이가 눈감기 사흘 전쯤에….”

나는 잠시 삽질을 멈추고 뒤돌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계속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얘가 내 베개 옆에 가만히 엎드려서 빤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잠결에 얘를 안아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봉순이가, 봉순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더라….”

나는 삽날에 걸린 커다란 돌부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돌은 차갑고 무거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봉순이를 왈칵 안았는데…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봉순이가 엎드려 있던 곳을 보니까… 거기에 내 양말 두 짝이 얌전히 놓여 있는 거야….”

어머니는 계속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사람한테 일 년이 강아지한텐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내 옆을 지켜준 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주면서.”

나는 묵묵히 계속 삽질만 했다. 내가 파고 있는 어두운 구덩이가 어쩐지 꼭 내 마음만 같았다.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