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부사장 사건 알려지기까지
‘Mf****’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465자짜리 글은 5일 0시 50분(현지 시간)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대한항공 KE086편(A380 기종) 항공기에서 있었던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40·여)의 ‘땅콩 리턴’ 사건을 신속하게 대한항공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직원들은 “기가 막힌다” “바깥에 알리자”라는 댓글을 다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고, 결국 사건의 전말이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
블라인드 앱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고, 익명으로 같은 회사 동료들끼리 불만과 고충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어 속이 후련하다는 것이다. 일반 직원들은 ‘땅콩 리턴’ 사건처럼 임원 등 책임자들의 행태를 서슴없이 비판하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블라인드 앱이 개설된 기업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신한은행, NHN, 넥슨, LG전자, 대우조선해양 등 63곳. 이들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게시판을 만들었다. 재계 1위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게시판은 아직 개설되지 않았다.
직장 상사나 임원을 비판하는 글에도 직원들은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한 은행 게시판에는 “상사 인사평가가 끝나자마자 태도 돌변하는데 치사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비판 글이 호응을 얻었다. 직원들은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의 실명을 거론하며 “정신 차리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한항공의 경우 조 부사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 비판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에게 블라인드 앱은 골칫거리다. 사내의 부정적 여론을 차단해야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D업체 인사팀 관계자는 “익명으로 회사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면 사기도 떨어지고 경영자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앱에 올라온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모니터링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기업도 많다. 한 소셜커머스 업체의 인사팀 관계자는 “직원들의 불만을 늘 받아들여 원스톱으로 개선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블라인드 앱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건혁 gun@donga.com·강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