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36세때 그려… 1년뒤 美망명, 전문가 “담담한 기품 엿보이는 수작”
황필홍 단국대 교수(개화공정미술 대표)는 “중추원 의관을 지낸 지재(之裁) 이규익 선생의 환갑잔치 때 61명의 유명 인사가 선물로 만든 서화첩에서 이 전 대통령의 채색수묵화와 글씨를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황 교수가 입수한 이 서화첩은 ‘헌수첩(獻壽牒)’이라는 제목의 두 권짜리 책으로 이 전 대통령이 36세 때인 1911년 만들어졌다. 헌수첩에는 해사 김성근과 동농 김가진, 우하 민형식, 경석 이우면 등 당대 명필로 이름을 날린 구한말 고위관료도 대거 이름을 올렸다.
이 전 대통령의 작품은 기암괴석을 중심으로 노란색과 분홍색 국화가 수북이 피어 있어 전체적으로 격조가 있으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준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직후 청운의 꿈을 안고 귀국한 청년 이승만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계몽운동을 펼치다 105인 사건에 연루돼 1년 뒤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서예와 고미술 전문가인 이동국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작품에 쓰인 글씨는 이 전 대통령의 필적이 맞다”며 “담담한 기품이 엿보이는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대통령은 소년 시절 나비 그림을 특히 잘 그려 ‘이 나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조혜자 여사는 “오래전에 남편이 그 서화첩에 실린 시아버지 그림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고 했다”며 “다시 한 번 그 그림을 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