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작가 수키 김이 쓴 북한 여행기 ‘Without you, there is no us’(한글판 제목 ‘평양의 영어선생님’)가 작가 윤리에 관한 미묘한 논란에 휩싸였다. 이 책은 그가 2011년 평양과학기술대에서 6개월간 학생을 가르친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김진경 평양과기대 총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키 김의 태도와 책, 거짓말로 정말 화가 난다. 그가 우리를 속였다”며 “특히 대학교수들이 선교사라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김 총장도 평양에서 대학을 꾸려나가자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수키 김은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변호했다. “기자로서 북한을 3차례 다녀왔을 즈음 그곳에 정착하지 않으면 선전만 해줄 뿐 의미 있는 얘기를 쓸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평양과기대에서 가르칠 기회가 났다. 난 실명을 사용했고 대학은 내가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비밀 준수 계약에 서명한 적도 없고 글을 쓰지 않기로 약속한 적도 없다. 평양과기대 교수들이 선교를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목표는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황석영은 1989년 한 달 남짓 북한을 다녀와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황당한 방문기를 썼다. 북한이 보여주는 것만 둘러본 황석영의 글에 비해 수키 김의 책은 ‘잠입 저널리즘(undercover journalism)’의 사실 추구 정신이 빛난다. 그는 영리하게도 북한의 유일한 사립대인 평양과기대의 특수성을 이용할 줄 알았다. 다만 선교사 운운한 것은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소련 작가 솔제니친이 1956년 ‘수용소 군도’를 써내면서 스탈린 체제에 침묵했던 서구의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했다. 우리에게는 1990년대 이후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수용소 군도’ 같은 역할을 했다. 아직도 재미교포 신은미 씨처럼 북한을 몇 번 여행하고 와서는 북한은 활기찬 곳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수키 김은 북한의 엘리트 계층 자녀에게조차 억압적 체제가 가져오는 무지와 불안을 예리하게 잡아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