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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문병기]돼지고기와 규제비용총량제

입력 | 2014-12-11 03:00:00


문병기 경제부 기자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에두아르도 포터의 책 ‘모든 것의 가격’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국은 2010년 당시 화폐 가치로 한 생명의 가치를 750만 달러로 매겼다. 영국 환경부는 한 사람의 건강한 삶은 연간 2만9000파운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으며 세계은행은 인도인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의 가격을 9만5000달러 수준으로 환산하기도 했다.

생명에 값을 매기려는 시도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꼭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다. 국가나 거대기업의 실수로 생명을 잃은 경우 망자(亡者)의 유가족이 힘의 논리에 휩쓸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내팽개쳐지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처럼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아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각종 제도와 규제들도 마찬가지다. 제도와 규제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정책 수립 과정에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규제비용총량제는 한 가지 규제가 신설돼 기업 등의 비용이 늘어나면 소관 부처가 같은 비용이 드는 다른 규제를 없애도록 하는 규제감축 방안으로 농림축산식품부 등 7개 부처가 현재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범 운영만으로 규제비용총량제의 장단점을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몇몇 사례를 보면 탁상 위에서 만들어진 논리로 규제가 도입됐던 과거에 비해 나아진 점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28일부터 전면 시행되는 돼지고기 이력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소비자들은 돼지고기에 새겨진 식별번호를 통해 이 고기가 어느 농장에서 생산됐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당초 돼지고기에 식별번호를 새기는 방식을 놓고 전자태그(RFID)를 이식하는 방법과 도장을 찍는 두 가지 방안을 검토했던 정부가 전자태그 이식을 포기한 것은 규제비용총량제의 영향이 컸다. 농가가 부담해야 할 규제비용을 측정해 보니 도장을 찍는 방식은 마리당 30원에 불과한 데 비해 전자태그 방식은 130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규제비용총량제가 없었다면 규제대상인 농가의 부담이 4배 이상으로 많아졌을지도 모르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규제비용총량제가 자칫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측정하기 어려운 규제 비용을 핑계로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하려 한다”는 일부 야권의 반대로 이 제도 도입의 근거를 담은 행정규제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규제비용총량제는 정부가 규제대상의 관점을 고려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규제비용총량제로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우려된다면 일단 좁은 범위에서 시작하거나 운영방식을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규제개혁은 정치 진영을 초월한 우리 사회의 과제다. 지금도 많은 소상공인은 그들의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정치권이 잊지 않길 바란다.―세종에서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