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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승건]당근도 제때 줘야

입력 | 2014-12-12 03:00:00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10대 초반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실험을 했다. A그룹 학생들에게는 “시험 결과가 나오는 즉시 성적이 올랐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B그룹에는 “성적이 오른 학생에게 한 달 뒤에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두 집단 학생 모두에게 상금이라는 ‘당근’을 내걸었지만 성적 상승의 효과를 본 쪽은 A그룹뿐이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유리 그니지와 존 리스트가 쓴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에 나오는 얘기다. 두 학자는 경제학의 틀을 통해 인센티브를 어떻게 활용해야 효과적인지를 알아내려 했다. 이를 위해 교육, 기업 운영, 기부금 모금 등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실제 실험을 통해 얻은 결론을 내놨다.

프로스포츠는 인센티브가 가장 두드러진 분야 중 하나다. 올해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인 넥센 서건창의 내년 연봉이 9300만 원에서 2억7000만 원(222.6%)이나 오른 3억 원으로 껑충 뛴 것은 실적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프로스포츠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 성적이 좋아도 인센티브가 있지만 팀 성적이 좋아도 마찬가지다. 정규시즌만 우승해도 해당 종목 단체에서 상금을 준다. 이후 포스트시즌 결과에 따라 별도의 상금이 있다. 대개 구단에서도 단계별로 상금을 내놓는다. 이를 합치면 여럿이 나눠 가져도 평범한 월급쟁이는 손에 쥐기 어려운 목돈이 된다.

정규시즌 1위를 해 상금이 나왔다고 하자. 선수들에게 “챔피언결정전이 끝나고 나중에 줄 테니 열심히 하라”고 하면 효과가 있을까. 결과는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일 것이다.

몇 년 전 프로배구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시즌 1위 팀이 3위 팀에 완패했다. 당시 정규시즌 우승 구단은 “챔피언결정전을 마치면 보너스를 모두 합산해 주겠다”고 했다. 반면 정규시즌 3위 팀 구단은 어쨌든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며 일단 그에 대한 보너스부터 줬다. 선수들끼리는 못할 말이 없다. 시리즈가 시작하기도 전에 정규시즌 우승 팀 선수들 사이에서는 “3위 팀도 보너스를 받았는데 우리는 뭐냐”라는 말이 돌았다. 전력이 비슷하다면 승부를 가르는 건 분위기다. 어차피 쓸 돈이라면 나중보다는 지금이 중요하다.

당시 3위를 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정상에 오른 팀은 삼성화재였다. 이 팀은 최근 2라운드(전체는 6라운드)를 전승으로 마치자 선수들에게 상품권을 지급했다. 성과를 올렸으면 많든 적든 그때그때 보상을 해 줘야 이후에도 동기 부여가 된다는 게 이 구단의 생각이다. 올 시즌 프로배구는 전력 평준화로 어느 때보다 순위 경쟁이 치열하다. 마지막에 웃으려면 ‘당근’의 크기를 떠나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실,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에 나온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따로 있다. 시험을 보기 전에 미리 상금을 나눠준 뒤 성적이 오르면 그대로 두고 떨어지면 회수하는 것이었다. 10대 학생이 아닌 성인 프로 선수들에게 돈을 줬다 빼앗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