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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 경질 부른 체육단체 수사… 7개월간 1명 구속뿐

입력 | 2014-12-12 03:00:00

[‘정윤회 문건’ 파문/용두사미 ‘체육비리 척결’]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스포츠계 비리 척결’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오른쪽)이 5월 22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 개소식에서 경찰 관계자와 함께 현판을 가리키고 있다. 동아일보 DB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월 면직 처분된 이유 중 하나가 스포츠계 비리 척결에 미온적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반면 지난해 10월 문체부 제2차관으로 임명된 김종 차관은 ‘스포츠 4대악 척결’을 강하게 주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를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김 차관이 추진한 ‘스포츠계 비정상의 정상화’는 1년간 거의 성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창대한 시작, 미약한 성과


스포츠계 비리 척결은 지난해 5월 한 태권도 선수의 아버지가 심판의 편파 판정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고, 박 대통령이 2개월 뒤 국무회의에서 이 사건을 직접 거론하면서 시동이 걸렸다.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지난해 8월 정부의 체육정책을 담은 ‘스포츠비전 2018’을 발표하면서 체육단체 감사계획을 내놓았다. 김 차관은 “대통령께서 날 임명한 이유가 비리 척결”이라고 공언하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전국 2099개 스포츠단체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벌여 337건의 비리 정황을 포착해 10개 단체를 수사의뢰하고 19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비리 내용이라고 하는 게 기껏해야 몇백만 원의 공금횡령 등에 불과했다.

이에 문체부는 올해 2월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5월에는 검찰, 경찰과 합동으로 ‘스포츠 4대악 합동수사반’을 발족했다. 하지만 7개월이 되도록 눈에 띄는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전시성 행정이 아니냐는 비난을 듣고 있다. 지난달 대한택견연맹 회장을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시킨 것 외에는 별다른 성과가 없다. 현재 5건의 비리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한 수사관은 “6명의 인원으로는 수사에 한계가 있다. 관련자들이 해외 훈련 등의 이유로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 적고 체육계 특유의 선후배, 사제 문화 때문에 서로 감싸주려고 해 증거를 잡기도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 속칭 ‘대부’의 장기집권이 문제

개혁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돼 오히려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도 있다.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와 같이 ‘권력’을 잡은 뒤 정관계의 힘까지 얻어 그 악행이 묻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조사해도 티끌 정도의 비리만 드러나는 이유다.

스포츠계에는 속칭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 많다. 그 종목의 발전에 기여도 많이 했지만 길게는 20년 이상 ‘장기집권’하면서 상당히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파워게임에서 이겨 계속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편 4대악 관련 신고도 세력 다툼 중 상대를 흠집 내려는 게 대부분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긴 하지만 조사해 보면 별 내용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 협회 관계자는 “한 번 조사가 들어오면 며칠간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로 자료 제출에 정신이 없다. 대부분 혐의 없음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억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 비리자 재진입 막는 법률적 조항 필요

4대악 척결의 주무자인 김 차관이 정윤회 씨와 연결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인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상일 체육국장은 ‘여야 싸움으로 몰고 가야’라는 쪽지를 김 차관에게 건네며 논란을 일으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스포츠계 비리 척결의 핵심 주무자들이 모두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4월 정윤회 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특혜 의혹이 제기된 이후 문체부가 오히려 4대악 척결 대상자를 감싸주기에 급급하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4대악을 척결할 주무부처가 정치적 입김에 떠밀려 특정인의 비리를 덮어주고 있다는 의혹이다. 스포츠계 비리 척결을 위한 합동수사반·신고센터도 이런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포츠계 비리 척결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스포츠에 정통한 한 인사는 “어느 조직이나 비리는 있는 법이다. 모든 스포츠단체를 범죄 집단으로 규정하고 거창하게 ‘4대악 신고센터’를 만들어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다 보니 부작용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합동수사반·신고센터에 스포츠인을 배제한 것도 문제다. 스포츠계를 잘 알지 못하니 성과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비리 또는 비위로 법적 조치를 받은 사람은 아예 해당 단체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법률적 조항을 만드는 등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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