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치열해지는 국제 여론전… 한국 정부의 ‘전략’은
4강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 해당 국가의 대(對)한반도 정책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 정부가 평소에 이들을 ‘관리’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을 위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도 있다. 비록 바닥을 쳤다는 평가가 있지만 한일관계가 개선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 당시 양국이 공동의 동맹국인 미국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친 것이 좋은 예다.
치열한 로비전의 현장 워싱턴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도 주요 정책결정자들이나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반도 관련 이슈를 제기하고 여론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데니스 핼핀 교수는 한 달에 수차례 각종 매체 기고를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극우파의 역사 부정과 북한 김정은 정권의 독재 등을 고발하고 한국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전 세계 탈북자들을 인터뷰하고 북한 인권 관련 자료를 모아 보고서를 내는 데 미국 내에서 큰 기여를 했다. 탈북자의 대모를 자처하는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미국 조야에서 탈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중국의 탈북자 북송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친 것은 풀뿌리 시민운동의 개가로 평가된다.
과거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한일관계에 대한 조언을 활발히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2001년 8월 13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한 뒤 한국, 중국의 반발이 거셌다. 공교롭게도 10월 한국 방문을 앞둔 시점이어서 일본 정부의 고민이 컸다. 총리관저는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에게 ‘묘수’를 문의했고 그는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하는 중립적인 추도시설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것과 △한일 역사 공동연구기구 설치를 한국에 선물로 제안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현 아베 신조 정권 들어 한반도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한반도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아베 총리의 일방적 판단이 우선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제한적인 중국과 러시아 전문가들의 활동
한중관계가 강화되면서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몸값도 덩달아 뛰고 있지만 활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롄구이 교수처럼 거침없는 대북 비판을 쏟아내는 전문가도 있지만 아직은 대부분 말을 아끼는 편이어서 속 시원한 분석과 전망도 잘 나오지 않는다. 중국 정부의 대표적인 지한파였던 리빈(李濱) 전 주한대사가 2007년 한국 측에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체포돼 공산당 당적과 현직을 박탈당하는 처분을 받았다.
정부도 현지 공관을 이용한 한반도 전문가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은 올가을부터 참사관 1명을 아예 공공외교 담당으로 배정해 한반도 전문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한국의 주장을 알리는 업무를 하도록 했다. 중국대사관도 정기적으로 한반도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한 일본 전문가는 “한국 정부의 일본 내 한국 전문가 접촉은 아주 미흡한 수준”이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기 힘들면 동북아역사재단 등과 같은 반관반민 단체들이 나서 한일 학자나 언론인 등의 교류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 정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