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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의 생각돋보기]‘시민’에 대하여

입력 | 2014-12-13 03:00:00


몰리에르의 ‘시민 귀족’ 공연 그림.

현대사회에서 ‘부르주아’라는 말은 부자 혹은 상류층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이 단어는 귀족의 지배를 받는 특정 계급의 이름이었다. 중세 봉건시대에 처음으로 나타난 이 계급은 농사를 짓지 않고 도시에 살면서 상업에 종사했다. 당시 도시의 명칭이 부르(bourg)였으므로 그들은 부르주아(bourgeois·부르에 사는 사람)로 불렸다.

그들의 부(富)는 토지에서 나온 게 아니고, 생산에 의한 것도 아니며, 돈의 차액에 의한 것이므로, 자본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 상업계급이 왕성한 이윤추구 욕구에 의해 상업과 산업을 발달시켰으며, 산업혁명을 통해 공장을 짓고 상품을 만들었다. 그것들을 실어 나를 선박도 제조했다. 당연히 기술자가 필요했고, 부동산 매매 계약이나, 상거래 행위를 조정하기 위한 공증인이나 변호사가 필요했다. 재산 관리와 사업회계를 위한 회계사도 필요했다. 유일한 자산인 육체의 건강을 위해 의사도 필요했다. 그래서 부르주아들은 엔지니어, 변호사, 회계사, 의사들을 자신의 아들들 가운데서 키워냈다.

오늘날 의사, 변호사 등을 부르주아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단어의 의미와 그대로 부합한다. 사제와 귀족 두 지배계급 밑에서 제3신분으로 분류되던 부르주아 계급은 1789년에 혁명을 일으켜 드디어 경제적 힘에 걸맞은 정치적 권력까지 얻게 되었다. 우리가 ‘시민혁명’으로 부르는 ‘프랑스 대혁명’이다. 혁명의 원어 명칭은 ‘부르주아 혁명’이다.

북한이 공산주의 혁명 후 모든 사람을 ‘동무’라고 불렀던 것처럼, 프랑스 대혁명 후에도 사람들은 서로를 ‘시민’이라고 불렀다. 혁명 선언문 제목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D´e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이다. 모든 인간은 그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감히 문제 삼을 수 없는 절대적 권리, 즉 생존권과 행복추구권을 갖고 태어났다는 루소의 자연권 사상을 기초로 해서였다.

그런데 나라에는 농촌도 있는데 왜 하필 ‘시민’이라는 말이 선언문에 추가되었을까? 원형은 루소에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시민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이란 ‘법을 지키고 공직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공공성에의 참여가 곧 시민의 조건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니까 프랑스 대혁명은 고대 도시국가 차원의 시민 개념을 근대적 국가의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우리는 가끔 우리 국적 개념에 해당하는 법률적 지위를 미국에서는 왜 ‘시민권’이라고 말하는지, 또 서구 모든 나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때면 왜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이라고 말하는지 의아해했었다. 시민 개념이 프랑스 대혁명에서 시작되었고, 그 모델이 그리스 로마의 도시국가였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 의문이 풀린다.

최근 한 사회학자가 “사회 개혁의 단초를 발견하려던 시민들이 ‘국가 개조!’라는 강력한 발언이 나온 이후 무기력한 국민으로 떨어졌다”고 쓴 것을 보고 ‘시민’의 어원적 역사를 한 번 짚어 보았다. 서양의 시민 개념과 같은 역사적 맥락이 없는 우리가 도시의 주민을 ‘시민’, 나라의 주민을 ‘국민’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는 지식인적 비판의식에 충실한 나머지 언어가 사회적 관습이라는 인문적 교양은 조금 소홀히 한 듯싶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