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아름답고 행복한 웰빙이 곧 웰다잉 [특집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숨 한 번 편히 쉬어보고 죽고 싶소.”
이창재 감독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한 환자에게 들은 이야기다. 암이 온몸으로 퍼진 그 환자는 숨 쉴 때마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단 한 번이라도 아픔 없이 숨을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가쁜 숨의 고비마다 탄식하곤 했다. 끝내 이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그를 이 감독은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12월 4일 개봉해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목숨’의 제작 뒷이야기다.
이 감독은 신음 소리와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10개월 넘게 머물며 이 작품을 찍었다. 영화에 ‘목숨’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고통 없이 숨 쉬고 싶다’는 망자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감독은 “그날 이후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늘 나의 삶에 감사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카메라에 담은 호스피스 병동 내 환자들의 평균 생존 기간은 21일. 그 짧은 시간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관객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삶을 바꿔놓는 누군가의 죽음
11월 말 개봉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진모영 감독의 카메라는 76년간 함께 살아온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 부부를 담는다. 평생을 신혼부부처럼 살아온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지상파 다큐 프로그램으로 방송돼 이미 화제가 된 적 있다. 스크린 안에서도 할아버지는 똑같다. 냇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 옆에 조약돌을 던져 물벼락을 맞히다가 어느샌가 꽃을 따 할머니 귀에 꽂아주고, 깊은 밤이면 화장실 가기 무서워하는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나 첫사랑에 들뜬 소년 같은 그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 영화가 촬영된 1년 4개월 사이, 생기 넘치던 할아버지는 점점 노환에 침식돼가고, 결국 어느 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다. 진 감독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촬영을 시작할 때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죽음은 도처에 있고, 불현듯 다가온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닥친 죽음은 남은 이에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이승연 실장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5분 간격으로 참사를 피한 경험이 있다. 지하 빵집에 들렀다가 “오늘은 살 만한 게 없네” 하고 빠져나온 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갈랐다. 이 실장은 “그때 무엇이라도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면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 일을 겪은 뒤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경험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이 실장의 말이다.
“충격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이 짐 정리예요.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사람이 치워야 할 짐이 너무 많은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앞으로 남은 삶은 여행 온 것처럼 단출하게,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살자고 마음먹었죠. 그게 죽음준비의 시작이었어요.”
이창재 감독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며 “영화 만들기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번 학기 첫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것이 내 마지막 강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죽기로 강의할 테니 여러분도 죽기로 들어달라. 비장해지라는 게 아니라 소중히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말 한 번도 휴강하거나 수업 준비를 게을리한 적 없이 학기를 마쳤다고 한다. 그는 “일뿐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주위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변했다. 여덟 살 된 아이와도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가며 놀아준다. 죽음을 알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더 소중하고 절실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모든 것이 더 소중하고 절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76년을 해로한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별을 맞는다.
조문객을 미리 만난 의사
11월 24일 서울 신문로 각당복지재단에서는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인 ‘죽음준비교육 지도자과정 심화교육’ 종강파티가 열렸다. 참가자는 웰다잉 강사가 되기 위해 지난 6개월~1년간 수십 회의 강의를 들은 이들이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매주 월요일 강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는 김석현 씨는 “현재 삶에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을 꿈꾸는 것이 곧 죽음준비이며, 웰다잉이자 웰빙”이라고 했다. 퇴직 교장인 손경순 씨는 이 자리를 통해 자신의 장례식 날 상영할 파워포인트(PPT)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세상 소풍을 끝내며’라는 제목을 붙인 상영물 안에는 그의 어린 시절 모습부터 재직했던 학교 학생들과의 추억, 가족과 즐거웠던 시간 등을 보여주는 사진이 가득했다. 손씨는 “조문객들이 이 영상을 보면서 나의 삶을 추억하기를 바란다”며 “그들에게 직접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PPT 안에 ‘안녕하세요. 저 지금 굉장히 행복해요’ 같은 메시지를 녹음해 넣을까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죽음에 앞서 소중한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있는 것도 죽음준비의 장점으로 꼽힌다. 11월 16일 세상을 떠난 탤런트 김자옥 씨는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암은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병이다. (죽기 전에) ‘남편한테 좋은 말을 해줘야지’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 동료 의사들과 죽음에 관한 대담집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를 펴낸 정현채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도 “죽음에 임박해 몸과 마음의 힘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 남은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며 고(故) 홍성훈 인천 홍정형외과 원장 사례를 소개했다. 명망 있는 의사였던 고인은 2012년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간으로 전이된 상태라는 진단을 받자 자신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불필요한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후 지인들에게 직접 전화해 자신의 뜻을 알렸다고 한다. 후배들은 평소 사진 촬영을 즐긴 홍 원장을 위해 부랴부랴 사진전을 마련했고,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해 가까운 이들과 모두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장례식에 올 조문객을 미리 다 만난 것”이다. 이후 홍 원장은 암 진단을 받은 지 한 달째 되는 날 잠든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정 교수는 “이 죽음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 본 고 정기용 건축가의 죽음과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죽음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2012년 대장암으로 눈을 감은 정기용 건축가 역시 암 선고 뒤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데 사용했다. 임종을 앞둔 그는 침대에 실려 가족, 사무실 동료 등과 함께 가까운 숲으로 봄나들이를 떠난다. 그곳에서 남긴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그대로 그의 유언이 됐다. 정 건축가는 영화 속에서 “나이가 들고 늙을수록 철학 공부를 해야 된다.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된다. (중략)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죽음준비의 한 방법으로 건강할 때 미리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혀두자는 운동도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전의료의향서 쓰기다. 전문가들은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많은 환자가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인공호흡기 부착, 심폐소생술, 혈압상승제 투여 등의 연명치료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의료비와 환자 및 가족의 고통이 발생한다. 문제는 환자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 해도 의식불명 상태 등에 놓여 자신의 뜻을 명확히 표시하지 못할 경우 치료를 중단하기 힘들다는 것.
대법원은 1997년 12월 의식불명 상태의 뇌출혈 환자를 그 아내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킨 의료진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했다. 반면 2009년에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던 김모 할머니 가족이 “환자가 평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했다”며 병원을 상대로 낸 인공호흡기 제거 청구 소송에서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김 할머니가 평소 일관되게 인공호흡기 치료 등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점을 참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생전에 임종기 치료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둬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2010년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캠페인도 시작됐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목숨’의 한 장면.
지난해 7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는 담당의사(또는 병원윤리위원회)가 확인하면 환자의 의사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후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문의와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관련 서식을 무료 배포하는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문의 02-3381-2670) 자원봉사자 유명숙 씨는 “평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화 상담을 하는데, 보통 하루에 40~50통 씩 전화가 온다”며 “사전의료의향서 배포 건수는 2013년 1만4000장, 2014년은 10월 말까지 2만4407장”이라고 밝혔다. 홍양희 공동대표는 이에 대해 “중환자실에서 가족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온갖 의료기기가 내는 소음에 둘러싸여 생을 마무리하기보다, 좀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죽음을 원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마무리
1983년 세상을 떠난 미국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스코트 니어링의 바람도 그것이었다. 100세가 됐을 때 음식 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맞은 그는 미리 작성해둔 유언장에 죽음의 순간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그의 아내였던 헬렌 니어링이 저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 공개한 이 글에는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다음 내용이 담겨 있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 없다.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주사, 심장 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내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중략) 보통의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이 뜻대로 세상을 떠난 스코트의 마지막에 대해 헬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천천히 천천히 그이는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가 점점 약하게 숨을 쉬더니, 나무의 마른 잎이 떨어지듯이 숨을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중략) 나는 은총에 가득 찬 그이의 떠남에서 한 생명체가 자기 힘을 다 쓰고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목격했다. 스코트는 자신의 시간을 가졌고, 바라던 때에 갔다.’
스코트 니어링의 죽음이 많은 이에게 ‘아름다운 죽음’의 사례로 기억되는 까닭이다. 이승연 실장은 “어떤 죽음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사람이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며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지금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