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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문어발 경영”

입력 | 2014-12-15 03:00:00

2014년 대기업 구조조정, 1998년과 닮은듯 다르네




《 “삼성이 2014년 느끼는 위기감은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과거처럼 이미 때를 놓친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 스스로에게 메스를 대는 것이다.”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삼성그룹의 사업 재편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삼성뿐만 아니라 한화, SK 등 주요 기업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최근 기업들의 사업 재편이 1998∼1999년 외환위기 당시와 닮은 듯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 살기 위한 매각

1998∼1999년 국내 주요 기업들은 생살을 떼어내는 심정으로 빚투성이 사업부문들을 헐값에 매각했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이었다.

1998년 4월 삼성중공업이 굴착기 등 중장비 사업을 하던 건설기계부문을 스웨덴 볼보에 7억2000만 달러에 넘긴 것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당시 삼성중공업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부채비율이 700%에 육박했다”며 “빚과 함께 사업부문을 해외 업체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삼성중공업은 당시 발전설비 및 선박엔진 사업도 매물로 내놨고, 삼성항공도 항공기 제작사업부를 내놨다.

부채비율 1200%였던 한화그룹 역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해외 기업과 합작해 설립한 회사들을 해외 합작법인에 매각하는 작업이 그 신호탄이었다. 한화는 1997년 12월 한화바스프우레탄을 1200억 원에 독일 바스프사에 매각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까지 4개월 단위로 해외에 계열사들을 매각했다.

당장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이다 보니 주력 사업조차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 한화는 핵심 사업이던 한화기계의 베어링 사업부문을 1998년 8월 독일 FAG사와 합작한 FAG한화베어링(현 셰플러코리아)에 매각했다. 또 당시 그룹 전체 매출액의 35%를 차지하던 한화에너지도 정유부문과 발전부문으로 나눠 매물로 내놓았다.

쌍용그룹도 쌍용자동차를 대우그룹에 넘긴 1998년 쌍용투자증권을 미국의 H&Q AP에 매각하고 이듬해에는 쌍용정유를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사 펀드에 매각했다.

○ 문어발→선택과 집중

지금은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떼어내고, 주력 사업은 외부에서 역량 있는 기업을 인수하고, 내부적으로 업무가 중복되는 계열사끼리 합병시키는 전략적 인수합병(M&A)이 핵심이다.

삼성이 최근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테크윈 등 비주력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과거와 같은 ‘문어발식 경영’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라며 “삼성이 20년 넘게 해오던 광소재 사업을 최근 미국 코닝사에 매각하고, 삼성전자 내 의료기기사업부를 삼성메디슨으로 합병시키려는 것 역시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화가 최근 태양광 계열사인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을 합병한 것 역시 태양광 산업에 주력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한화 관계자는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신동아화재해상보험(현 한화손해보험) 인수 등 선택과 집중을 위한 구조조정을 벌여왔다”며 “올해 삼성 계열사를 인수하고 한화솔라원-한화큐셀 통합을 발표한 것도 이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했다.

수감 중인 최태원 SK 회장 역시 주요 계열사 대표들에게 ‘버릴 건 버리고 간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있어 내년에 고강도 계열사 구조조정이 전망된다.

김지현 jhk85@donga.com·황태호·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