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직장상사 스트레스’
○ “나중에 줄게”의 ‘나중’은 너무 먼 미래
직장인 이모 씨(27·여)가 안 믿는 말은 “나중에 줄게”다. 선배들이 말하는 ‘나중’이 현재가 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지갑을 안 가져와서, 카드가 없어서 등 선배의 이유는 다양했고 이 씨의 핑곗거리는 부족했다.
2년 차 직장인 윤모 씨(30)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과중한 업무가 아닌 상사의 행패다. 입사 면접 당일 짜증스럽게 이력서를 넘기며 “자기소개나 한 번 해봐”라고 했을 때 ‘저 사람만은 상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걱정은 현실이 됐다. 윤 씨는 팀장에게 늘 “야”, “이 새끼야”로 불렸다. 실수라도 했을 때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밀며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냐”고 잔소리를 해댔다.
참다못한 윤 씨가 본인도 모르게 “몸에 손은 대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한 뒤부터 팀장의 행패는 심해졌다. 커피 심부름은 윤 씨의 몫이 됐다. 물건을 줄 때는 서류를 일부러 멀찌감치 던지거나 떨어뜨렸다. 후배 앞에서 윤 씨를 무시하며 무안을 주는 일도 잦아졌다. 윤 씨는 “유일한 희망은 다른 팀으로 인사가 나는 것이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며 “아무래도 팀장이 전출을 막는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 글로 읽어도 짜증나는 직장 상사의 폭언
만성피로감, 소화불량, 두통, 우울증, 수면장애, 피부 트러블, 체중 변화, 불안장애…. 상사의 부당한 갑질에 스트레스를 받은 직장인들이 털어놓은 고통은 다양하다. 지난해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 설문조사(중복응답 가능)에 응한 734명의 직장인은 ‘직장 상사의 부당한 갑질’에 대해 제각기 다른 후유증을 호소했다.
지난달 사람인이 직장인 1008명에게 다시 물었다. “가장 불쾌감을 느끼게 한 직장 상사의 폭언”이 질문이었다. 직장인이 말한 상사의 폭언을 종합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야, 너 지금 장난치냐. 일을 이따위로 하는 자식이 회사는 어떻게 들어왔지 진짜. 개뿔도 모르면 아는 척을 하지 말아야지. 왜 자꾸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거야.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 회사 다니기 싫어? 나가 그럼. 넌 진짜 기본이 안 됐어. 일을 못하면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정체가 뭐냐고. 이따 회식 때 너 멀찌감치 떨어져서 앉아. 알았어? 그리고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니까 넌 팀장님한테 술도 따르지 마. 아 됐으니까 가 봐. 꼴도 보기 싫어.”
욕설은 제외했다.
○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문제
하지만 직장인들은 모두 ‘부당한 대우’라는 것을 알면서 당한다. 괜히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이기도 하다. 다들 참고 있는데 나만 ‘불의는 못 참는 용(기 있는)자’가 되기는 말이 쉽지 실은 어렵다. 좋은 직장상사도 많다. 그렇지만 어느 웅덩이에서든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문제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