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
소비자들은 생명보험사들을 향해 ‘보험 가입 2년 후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으로 간주해 일반사망 보험금의 2배를 준다’고 한 약관을 지키라고 하는 반면 생보사는 약관에 명백한 실수가 있었던 만큼 지킬 수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생보사는 이 경우 행정소송을 내거나 지급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뿐 아니라 평소 냉정을 잃지 않는 금융회사까지 얼굴을 붉히면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돈 앞에 민낯을 드러낸 양쪽의 모습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시사점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신용카드 분실 시 즉시 신고하라’는 권고에는 카드사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카드 약관에 따르면 고객은 도난신고 시점을 기준으로 60일 전 이후 발생한 제3자의 부정사용금액에 대해 보상받을 수 있다. 약관에 따르면 전날 밤 카드를 잃어버렸는데 이를 미처 몰라 신고가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구를 필요가 없다. ‘지금 분실 사실을 인지하고 신고한다’고 하면 부정 사용액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지금보다 더 독한 마음으로 자기 권리 보호에 나서야 한다. 이 대목에서 소비자가 금융사와 맺는 계약서인 약관을 숙지하는 게 중요하다. 약관이 너무 어려워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상품설명서라도 보자. 설명서 중에서 △주요 보장 내용 △보험금 지급 관련 유의사항 △계약자가 알아야 할 사항만 숙지해도 도움이 된다.
재해사망보험금 같은 특약을 내건 신종 보험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교훈은 ‘새로운 금융상품은 허점 덩어리’라는 점이다. 신상품이 매일 쏟아지고 후속 상품이 종전 상품의 약관을 복제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작은 실수가 확대 재생산되는 악순환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자살 보험금을 보라.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금호생명이 재해사망보험금 특약을 처음 만든 뒤 다른 보험사들이 이 약관을 그대로 베꼈다. 처음 잘못 만든 약관을 보험사들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가 전체 생보사로 번졌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잘못된 매매계약서 양식을 만들었는데 전국의 중개업자가 이 계약서를 가져다 쓴 셈이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