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7>흔들리는 교육 바로 세우자 (上) 사교육 악순환 끊으려면
특히 교육현장을 왜곡시키는 한국의 ‘사교육 지옥’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시작된다. 우남희 육아정책연구소장의 2009년 연구논문 ‘조기교육·사교육’에 따르면 1992년에는 유아 중 5.7%만이 영어 사교육을 받았으나 1996년에는 35.4%, 2007년에는 59%로 유아 사교육 비율이 급증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입학 전 학생의 67.2%가 영어 사교육을 받았다.
○ “엄마, 아빠” 입 열 때 “A, B, C”
폐해는 초등학교 입학 뒤에도 이어진다. 현재 국가교육 과정상 초1, 2학년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 3, 4학년부터 매주 2회, 5학년 이상은 매주 3회 영어 수업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립초등학교에서는 이 가이드라인이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서울 S초등학교는 1학년생들에게 할당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편법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했다. 1년에 204시간으로 공립초등학교 5, 6학년생이 배우는 것과 똑같은 양이다. 정규 교과과정에서는 영어를 편성할 수 없으니 체험활동 시간을 영어 수업의 우회로로 이용한 셈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검정교과서가 아니라 미국이나 영어 등 영어권 국가에서 출판된 교재를 영어 수업에 쓰기도 했다. 이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에 어긋나지만 학교와 학부모 등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적발하기가 힘들다.
최근에는 이런 조기교육이 영어뿐만 아니라 제2외국어와 글쓰기, 예체능 등 전방위로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4, 5세부터 중국어를 가르치는 어학원이 인기를 끌고, 영유아 학습지 시장에서도 한자와 중국어 비중이 늘고 있다. 또 평범한 중산층에서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국영수에 시간을 쏟아야 해서 바쁘다”며 수영 미술 피아노를 ‘취학 전 3종 코스’로 정해 일찌감치 시키는 부모도 늘고 있다.
○ 특목고 진학에 사교육은 필수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한 달에 사교육비를 100만 원 이상 지출하는가’라는 질문에 13.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그렇다’라고 답변한 비율이 31.0%로 늘었다. 외고나 국제고를 희망하는 학생은 28.1%, 과학고나 영재고를 희망하는 학생은 38.2%가 매달 사교육에 100만 원 이상을 쓴다고 답했다. 과학고·영재고, 자사고, 외고·국제고, 일반고를 희망하는 학생 순으로 사교육비 지출이 많은 것.
이는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기 위해서는 사교육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방증하기도 한다. 사교육에 투입할 자본이 충분한 중학생일수록 사교육을 통해 특목고와 자사고 입학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많은 경우 사교육과 동시에 우수 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1만8000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2만3000원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수능을 비롯한 초중고교 체제 전반이 바뀌지 않는 한 사교육을 뿌리 뽑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시민단체가 사교육 비용을 줄이고 사교육 자체를 근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녀를 공부시키려는 부모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 공교육이 사교육만큼의 효과와 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사교육 지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