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주교와 모차르트는 갈등 끝에 결별했을까요? 낮은 급료를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시내의 다른 귀족이 세 배의 급료를 주겠다고 했어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핵심적인 요인은 ‘존중’과 ‘자유’였습니다.
어린 시절 전 유럽을 다니며 각국의 군주를 알현했고 교황에게서 황금박차 훈장을 받았던 모차르트는 대주교가 자신을 한낱 하인으로 취급한다며 불쾌감을 표현했습니다. 결정적으로 불화에 기름을 부은 것은 대주교가 그의 외부활동을 막은 일이었습니다. 천성적 자유인이었던 모차르트는 뮌헨을 비롯한 큰 도시를 다니며 솜씨를 뽐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주교는 자신의 ‘하인’이 마음대로 다니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모차르트를 모욕적으로 떠나보낸 잘츠부르크는 오늘날 모차르트의 도시로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콜로레도 대주교와 그의 신하인 아르코 백작의 이름만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이죠. 절대주의 시대였기에 망정이지 당시 잘츠부르크에 원로원이나 의회라도 있었으면 시민들 전체가 훗날까지 험담을 들을 뻔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