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대응 낙제점/청와대 문건 유출] ①여론에 둔감… “찌라시” “국정전횡 없다” 수사 가이드라인 비판 자초 ②허술한 대응… 문건 보고 묵살… 유출 감찰뒤엔 “강압 조사” 역공 당해 ③시스템 붕괴… 대통령 결정만 기다리는 靑참모진, 신속한 대응 못해
《 “찌라시(사설 정보지)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래전에 곁을 떠나 연락도 끊긴 사람(정윤회 씨)과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는 사람(박지만 EG 회장)이 갈등을 빚고 국정 전횡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오찬에서 ‘비선 논란’ ‘권력암투설’ 등 세간의 의혹에 대해 정면 돌파에 나서면서 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정윤회 동향’ 문건에 국정 동력이 사그라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부담’만 줬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이 수사 결과 “문건의 실체는 없다”고 밝힌다 해도 ‘청와대 눈치 보기’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 靑, 11개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나
청와대는 ‘정윤회 동향’ 문건이 지난달 28일 세계일보에 보도되기 전까지 최소 4차례 이 사태를 수습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했다.
4월 초 세계일보는 청와대 내부 비위감찰 자료를 연쇄 보도했다. 청와대는 그때서야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청와대의 감찰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박 경정이 의심스럽지만 증거가 없다는 게 전부였다. 청와대는 박 경정을 수사의뢰하려 했지만 조 전 비서관이 반발해 유야무야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같은 달 15일 문건 유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퇴출시킨 사람이 반발해 수사의뢰를 할 수 없었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6월 조 전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오모 전 행정관을 통해 문건이 다량 유출된 사실을 청와대에 알렸다. 당시 오 전 행정관이 갖고 있는 문건 양은 128쪽에 달했다. 박 대통령의 말처럼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를 눈으로 확인하고도 청와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세계일보는 7월 다시 청와대 내부 감찰 자료를 보도했다. 당시 비위 내용은 이미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로 종결된 상태였다. 이때 청와대는 오보 대응에만 신경을 썼다. 세계일보가 청와대 문건을 다량 갖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지만 급한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한 것이다.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은 오 전 행정관을 상대로 1일 7시간 반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당일 박 대통령은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청와대가 부랴부랴 나선 데는 이런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유출자를 찾기보다 ‘강압 조사’ 논란만 일으켰다.
문건 작성부터 유출, 보도까지 11개월 동안 청와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국정 최고 컨트롤타워가 위기 상황에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이 청와대 내부의 폐쇄적 의사결정구조에 있다고 진단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수석비서관들은 권한과 책임이 모두 약하다 보니 대통령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며 “이런 수직적이고 경직된 의사결정구조 속에서는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청와대가 대통령부터 생각하고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 같다”며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적당히 덮고 넘어갈 수 있으면 넘어가겠다는 마음이 먼저 작동하니 신속하게 대응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이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