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경제부 기자
K 씨는 얼마 전만 해도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가장이었다. 결혼한 지 10년도 안 돼 서울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했고 여덟 살짜리 아들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인기 높은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부부가 모두 ‘신의 직장’인 공기업에 다닌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신의 직장’ 때문에 세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됐다. 부부가 근무하는 공기업이 지방 이전 공공기관 대상에 속한 탓이다. 지난달 말 K 씨의 회사는 부산으로, 아내의 회사는 전남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K 씨는 부산에, 아내는 나주에, 아들은 서울 할머니 집에서 각각 살게 됐다.
주중에 흩어져 살던 K 씨 가족은 금요일 밤에 모여 주말을 함께 보낸 뒤 일요일 저녁에 다시 생이별하는 생활을 이달 초부터 반복하고 있다. K 씨는 “헤어질 때마다 펑펑 우는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밟혀 주중 내내 마음이 무겁다”며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K 씨 부부만 유난스러운 게 아니다. 부부가 모두 지방 이전 대상 공공기관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 가운데 자녀를 서울에 사는 부모님이나 친척에게 맡기고 ‘세 집 살림’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가족을 서울에 두고 공공기관에 다니는 남편이나 아내만 혼자 지방에 내려가 ‘두 집 살림’을 하는 이들은 더 많다.
2012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 7700여 명 가운데 65%인 5000여 명이 가족을 두고 ‘나 홀로’ 이주했다. 경북 김천시처럼 지방소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나 홀로’ 이주 비율은 90%를 넘는다.
지금까지 지방 이전을 완료한 공공기관은 79곳. 올해 말에 41개 기관이 이전을 마치고 내년 말까지 21개 기관이 이전 작업을 끝내면 눈물의 두 집 살림이나 세 집 살림을 하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이전에 따른 시간적 금전적 낭비나 업무 비효율을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기업이 앞장서 나 홀로 생활하는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해주는 세심함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도 공공기관에만 맡겨 놓고 팔짱 끼고 구경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공공기관 직원들이 아이 낳고 교육시킬 수 있는 도시 인프라를 갖춰주는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조금이나마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