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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정임수]울며 세 집 살림

입력 | 2014-12-16 03:00:00


정임수 경제부 기자

금융공기업에 다니는 K 씨는 요즘 뜬눈으로 밤을 새울 때가 많다. 난생처음 혼자 살게 된 작은 오피스텔도 생경하거니와 ‘이산가족’이 된 가족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K 씨는 얼마 전만 해도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가장이었다. 결혼한 지 10년도 안 돼 서울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했고 여덟 살짜리 아들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인기 높은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부부가 모두 ‘신의 직장’인 공기업에 다닌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신의 직장’ 때문에 세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됐다. 부부가 근무하는 공기업이 지방 이전 공공기관 대상에 속한 탓이다. 지난달 말 K 씨의 회사는 부산으로, 아내의 회사는 전남 나주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K 씨는 부산에, 아내는 나주에, 아들은 서울 할머니 집에서 각각 살게 됐다.

부부가 눈물을 머금고 ‘세 집 살림’을 결정한 것은 아들 교육 때문이다. 아내가 아들을 나주로 데려갈까도 고민했지만 서울 강남에서 학원 보내고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아들을 학원 하나 제대로 없는 지방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아내의 퇴직도 생각했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맞벌이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주중에 흩어져 살던 K 씨 가족은 금요일 밤에 모여 주말을 함께 보낸 뒤 일요일 저녁에 다시 생이별하는 생활을 이달 초부터 반복하고 있다. K 씨는 “헤어질 때마다 펑펑 우는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밟혀 주중 내내 마음이 무겁다”며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K 씨 부부만 유난스러운 게 아니다. 부부가 모두 지방 이전 대상 공공기관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 가운데 자녀를 서울에 사는 부모님이나 친척에게 맡기고 ‘세 집 살림’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가족을 서울에 두고 공공기관에 다니는 남편이나 아내만 혼자 지방에 내려가 ‘두 집 살림’을 하는 이들은 더 많다.

2012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 7700여 명 가운데 65%인 5000여 명이 가족을 두고 ‘나 홀로’ 이주했다. 경북 김천시처럼 지방소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나 홀로’ 이주 비율은 90%를 넘는다.

지금까지 지방 이전을 완료한 공공기관은 79곳. 올해 말에 41개 기관이 이전을 마치고 내년 말까지 21개 기관이 이전 작업을 끝내면 눈물의 두 집 살림이나 세 집 살림을 하는 이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주말부부, 이산가족이 된 직원들의 정서적 불안이나 스트레스는 결국 공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두 집 살림, 세 집 살림이 버거워 결국 이직이나 퇴사를 택하는 직원도 많아질 것이다.

지방 이전에 따른 시간적 금전적 낭비나 업무 비효율을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기업이 앞장서 나 홀로 생활하는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해주는 세심함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도 공공기관에만 맡겨 놓고 팔짱 끼고 구경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공공기관 직원들이 아이 낳고 교육시킬 수 있는 도시 인프라를 갖춰주는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조금이나마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