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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추락에 러시아 ‘외환위기 악몽’

입력 | 2014-12-17 03:00:00

금리 6.5%P 대폭 인상에도 외국자본 이탈 속도 빨라져
서방 제재 겹쳐 푸틴 ‘사면초가’




국제유가의 잇따른 추락으로 러시아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6일부터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대폭 인상했다. 이 같은 인상은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선언) 사태 이후 최대폭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의 통화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발생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는 백약이 무효인 듯 연일 급락세다. 15일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64.44루블로 9.7%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를 위해 올해 모두 800억 달러를 쏟아부었으나 루블화 가치는 연초에 비해 49% 떨어졌다. 러시아 정부는 외국 자본 이탈이 올해 1340억 달러, 내년 1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달러화를 은행에 맡기면 지점장이 차를 내주는 등 특별 대접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드물다는 게 큰 문제다. 많은 돈을 지닌 이들은 이미 키프로스 등 조세회피 지역으로 떠나 환투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리 아이컨그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경제학)도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서 국제유가 하락, 서방의 제재, 광범위한 부패 등 러시아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달 11일 러시아 무기와 석유산업 투자자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담고 있는 ‘우크라이나 자유지원법’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되자 러시아 외환시장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의 내년 경제 전망이 더 어둡다는 점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대에 계속 머물면 내년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4.5∼4.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월가의 투자정보지인 ‘가트먼 레터’의 데니스 가트먼 대표는 “조만간 환율이 달러당 100루블까지 폭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무역업을 하는 드미트리 바키모프 씨는 “서민들은 루블화 약세 때문에 해외여행이나 가족 여행을 취소하고 달러화를 집 안에 묻어두고 ‘비 오는 날’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의 대외채무는 약 7000억 달러로 이 중 1250억 달러를 당장 내년까지 갚아야 한다. 그러나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은행과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수 없어 러시아가 제2의 국가부도 사태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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