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 폭락에 당국 외환시장 개입, 예금-연금 인출사태… 민심 동요 오바마 “추가 제재안 서명” 압박… 1998년 모라토리엄 재연될수도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신이 꿈꾸던 21세기의 ‘차르’가 될 것인가. 국가 부도를 맞는 ‘제2의 옐친’이 될 것인가. 푸틴 대통령이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
○ 떠나는 민심과 내부의 적
루블화 가치 폭락을 견디다 못한 러시아 정부는 17일 직접 시장 개입에 나섰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현재 우리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시장 안정을 위해 언제든 처분할 수 있도록 쌓아둔 70억 달러(약 7조6700억 원) 중 일부를 매각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날 러시아 외환시장은 개장 직후 또다시 5% 하락했다가 정부의 달러 처분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시 4.56% 상승하는 등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
푸틴 대통령의 ‘친구’로 불리는 에너지 관련 재벌들의 재산도 반 토막 나면서 푸틴의 권력 기반도 위태로워지고 있다. CNN머니에 따르면 푸틴의 최측근인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15명이 올해 경제위기로 500억 달러(약 54조3350억 원)의 자산을 잃었으며 최악의 경우 푸틴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업체 노바테크의 레오니트 미헬손 회장은 주가 폭락으로 87억 달러(약 9조4542억 원)를 잃었으며 푸틴 대통령의 ‘사냥 친구’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리신 노볼리페츠크철강 회장도 재산의 50%를 날렸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루블화 가치 하락은 정부의 경제조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나스타시야 네스베타일로바 영국 런던시티대 교수(국제경제학)는 “푸틴과 재벌 친구들이 시장의 통제를 상실한다면 군부 쿠데타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크림 반도 합병 이후 푸틴 대통령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던 국민의 민심도 떠나고 있다. 1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반크 지점에는 예금과 연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가치가 더 내리기 전에 루블화를 찾아 달러나 유로화로 환전하거나 수입 공산품이나 가구 보석 명품 등으로 바꿔 놓으려는 움직임이다. 18일부터 가격 인상을 예고한 이케아 가구매장에는 오전 2시에도 줄을 서는 광경이 목격됐다. 루블화 가치가 연일 하락하자 애플은 러시아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온라인 판매를 중단했다.
○ 서방의 추가 제재와 러시아의 대응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압박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6일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러시아 경제 제재 및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을 추가로 압박해 영토 확장 야욕을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최근 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이 법안은 러시아 국영기업들에 서방의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또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와 교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전술정찰 무인기(드론) 등 3억5000만 달러(약 3780억 원)어치의 군사 지원을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