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모든 것’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대부분 남녀의 결혼식 장면으로 끝을 맺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 워낙 없다 보니 결혼하면 사랑이 완성되고 영원한 것으로 얼렁뚱땅 막을 내리는 것 외에는 사랑에 대한 대중의 판타지를 채울 별다른 방법이 없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사랑은 변한다. 우리가 “너만을 영원히 사랑해”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할게”라고 뜨겁게 고백하는 이유는 ‘너만’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우리의 무의식이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혼생활 36년째인 가수 부부가 TV에 나와 “우리는 각방 쓰면서 따로 생활해요. 자주 붙어 있는 것보단 떨어져 있어야 해요”라고 밝히는 것이 부부생활 롱런의 빛나는 노하우로까지 여겨진다. 이혼하지 않고 30년 넘게 사는 연예인 부부 자체가 뉴스인 것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를 본 나는 눈물도 펑펑 흘렀고 마음의 정화를 경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랑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민망하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님아’ 속 사랑을 꿈꾸는 우리들의 마음은 흔히 “우리 아들 서울대 보내야지”라고 우리가 말할 때의 심정과 같은 종류인 것 같다. 우리가 간절히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영화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완벽한 러브 판타지를 구현하는 슈퍼맨이고 원더우먼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실화를 담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10일 개봉)이 보여주는 사랑은 내겐 ‘님아’ 속 그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루게릭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호킹. 운명적 여인 제인 와일드는 뜨거운 사랑을 멈추지 않으며 결혼을 ‘감행’하고 아이 셋을 낳는다. 그러나 고통스럽고 비루한 하루하루의 현실에 부딪힌 호킹 부부는 서로 다른 현실 속 사랑을 찾으며 종국엔 헤어진다.
평생 ‘우주만물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론’을 궁구해온 호킹이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완전하고 영원한 이론이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호킹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당신을 사랑했어. 나는 최선을 다했어”란 말이 진지하고 사려 깊게 느껴지는 것은 완성되지 못한 사랑도 사랑이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에 뜨거운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랑은 아름답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강박이 우리 사랑을 힘들게 하는 역설 속에 우리는 산다. 사랑의 유한성을 받아들일 때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변하는 사랑도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