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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이재명]정윤회보다 못한 청와대

입력 | 2014-12-18 03:00:00


이재명 정치부 차장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유연했다. 경제민주화라는 새 옷을 꺼내 입었다. 맞춤형 복지를 내세워 야당의 전매특허를 뺏어 왔다.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야권 인사들을 끌어안았다. 마지막 고비에서 아버지를 밟고 넘는 결단을 내렸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기까지 그의 번뇌가 얼마나 깊었을까.

주류의 주류(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주류의 비주류(김영삼)→비주류의 주류(김대중)→비주류의 비주류(노무현) 시대를 거쳐 다시 주류의 주류인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분명했다. 갈가리 찢긴 대한민국의 복원이었다. 하지만 ‘51 대 49 정치’에서 49는 내팽개쳐졌다. 51마저 편 가름 했다. 소수의 내 편만 남았다. 대한민국은 쪼그라들었다. 파편화된 주류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복원력을 잃은 세월호 신세다.

그는 갇혔다. 누군가는 구중궁궐이라고 하지만 그곳은 외딴섬이다. 고관대작조차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는 제대로 발도 뻗지 못한 채 노심초사하고 있다. 오로지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의문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고, 국민 행복은 무엇이란 말인가.

당장 청와대부터 괴이하니 답을 찾기 어렵다. 개헌 얘기 한마디 했다고 집권여당 대표를 닦달한 청와대가 정작 내부 권력암투 논란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출구 전략을 두고 논의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다. 그 사이 이전투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과대망상증 환자로 보고, 조 전 비서관은 3인방을 국정농단 세력으로 규정한다. 역대 이런 청와대가 있었나.

더욱이 청와대의 요점 파악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박 대통령이 ‘찌라시’ 타령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비선 논란’의 요점은 ‘외딴섬 청와대’다. 심지어 정윤회 씨도 그걸 안다. 정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세간에는 대통령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통치가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 기자회견도 자주 해 국민에게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한다. 중요 인사 같은 경우 어떤 배경에서 발탁한 건지 설명하면 의혹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의 청와대에서 위기는 재앙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행한 인적쇄신은 인사 참사로 이어졌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또 한 번 위기가 닥칠 것이다. 1998년 옷로비 사건 당시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본명(김봉남)을 알게 된 게 유일한 성과였듯 이번 검찰 수사의 유일한 성과는 아마도 국민이 정윤회의 얼굴을 알게 된 정도가 아닐까 싶다.

박 대통령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최대 승부수를 던져야 할 순간을 맞았다. ‘신의 한 수’가 될지, ‘패착’이 될지 갈림길에 섰다.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