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
벙어리장갑이 주는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맛깔스럽게 그린 시다. 요즘 매서운 추위가 계속돼서인지 더욱 정겨운 느낌이 든다. 벙어리장갑. 모양도 예쁘고 짜기도 쉬워 이맘때면 연인들의 선물로도 인기 만점이다.
허나 이 낱말,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있긴 하지만 써선 안 된다는 주장이 부쩍 늘고 있다.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벙어리)이 들어있어서다.
얼마 전 ‘엔젤스헤이븐’이라는 단체가 우리네의 불편함을 풀어줄 대안을 제시했다. 벙어리장갑의 순화어로 ‘손모아장갑’을 내놓은 것.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해서인지 알기 쉽고 어감도 좋다. 말을 바꾸면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다. 기세등등하던 ‘네티즌’이라는 말을 ‘누리꾼’으로 바꾸자고 했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러나 우리는 요즘 ‘누리꾼’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언론은 정신분열증이라는 말 대신 ‘조현병(調絃病)’이라는 새 용어를 쓰고 있다. 현악기의 줄을 조율해 맑은 소리를 내듯 정신의 부조화를 치유하겠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치매(癡태)라는 말을 버리고 ‘인지증(認知症)’이라는 말을 쓴 지 오래다. ‘어리석은 병’이 아니라 ‘인지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학적, 객관적 시각을 담은 것이다.
그런데 ‘벙어리’란 표현은 절대로 써선 안 되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꿀 먹은 벙어리’ 등의 속담은 버릴 수 없다. 비유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말맛과 글맛을 더할 때는 쓸 수 있다고 본다.
장애나 질병에 관한 말을 순화하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말보다 중요한 게 마음이다. 소외된 사람이나 약자는 말로 돕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도와야 한다. 그래야 오래간다. 겨울이다.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계절이다. ‘손모아장갑’이 모양만이 아니라 ‘두 손 모아’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까지 담는 그런 장갑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