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던 그 선생님은 30년 이상 교사생활을 했는데, 초임 시절에는 학습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을 방과 후 교실에 붙잡아놓고 야단도 치고 회초리도 들면서 닦달을 했다고 한다. 한 명도 뒤떨어지지 않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 경력을 더해가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성적만 잣대로 할 때는 뒤처지는 아이들이 다른 기준으로 보면 장점이 많다는 것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착하고 희생적인 심성을 가진 아이, 정직하고 성실한 아이, 그렇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예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작 닦달해야 할 아이들은 공부는 잘하지만 건방진 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위권 아이들이 잘못하면 더 호되게 꾸중했다.
“얘들아, 내가 해마다 새로운 반을 맡아 보니 어떤 반이든 항상 상위 몇 퍼센트와 하위 몇 퍼센트가 반드시 있더라. 네가 아이큐 일등급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그렇지 못한 친구가 있는 거니까 네가 잘나서 공부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너보다 못한 친구들에게 보탬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는 것이나 건강과 재능과 미모를 타고나는 것은 모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행운이다. 경쟁의 레이스에서 남들과 동일한 출발선에 서지 않고 태어날 때 이미 10km, 20km 앞에서 출발한 셈인데, 뒤에서 열심히 뛰어오는 사람들을 느리다고, 무능하다고 경멸한다면 누가 더 바보인가.
진정한 퍼스트클래스는 비행기의 일등석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을 격상시키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돈으로 일등석을 살 수는 있겠지만 고급스러운 인격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