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18>
흑인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공권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시내에서 경찰이 시위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이번 시위는 시기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은 지난달 추수감사절부터 올해 크리스마스까지 홀리데이 기간이라 우리로 치면 ‘파장’ 분위기다. 대부분 일손을 놓고 한 해를 마감하며 조용히 보내는데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게다가 서부 지방은 오랜 가뭄 끝에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와 물난리 등으로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여러 지역이 어수선한데도 시위는 확산되고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많은 시민들이 정말 뿔이 났으며, 이번 사태를 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지금 미국 언론들은 이참에 치안 및 사법체계에 대대적인 손질을 해야 한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공권력의 무자비한 집행이 서슴없이 일어나는 뿌리부터 도려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먼저 월스트리트저널은 연방정부의 철저한 조사를 전제한 뒤 후속 조치가 따를 수 있도록 경찰에 의한 총격 사망 사건이 일어날 경우 연방수사국(FBI)에 보고하는 걸 의무화할 것을 주문했다. FBI의 철저한 감시감독을 통해 지방 경찰들의 고삐 풀린 공권력을 미연에 방지해 보자는 취지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아무리 시민들의 총기 소유가 자유롭다 하더라도 시민들을 상대로 군대 수준의 중화기가 동원되는 것부터 우선 막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 국방부가 경찰에게 중화기를 제공하는 것부터 당장 중단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이는 이미 4개월 전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장갑차와 중화기를 동원해 무지막지한 진압에 나서면서 불거져 나왔던 비판들과 맥을 같이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찰의 군대화는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들이다.
여기에 사법 시스템 개혁을 주문하는 여론도 높다. 현 사법체계가 많이 배우고 돈이 많은 미국 사회 주류인 백인들이 악용할 소지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시위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또 다른 대목은 민생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외침들이다. USA투데이는 시위 현장에서 ‘빈곤 퇴치, 공교육체계 재정비, 정부의 친기업보호주의(corporate welfare) 종식’ 요구가 자연스럽게 함께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참에 미국 사회 전반을 개혁해 보자는 목소리들이다.
우선 시위대의 목소리 밑바닥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분노가 담겨있다. 지난해 미국을 달궜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당시 체포자들의 법률 조언을 맡았던 변호사 와일리 스테클로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시위 현장에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 규탄도 있고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도 있다.…미국인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들을 갖고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시위 현장에서는 뉴욕 경찰에 의해 목이 졸려 죽어가던 피해자가 수차례 내뱉은 단말마적 비명인 “숨 막혀(I can‘t breathe)!”가 구호로 외쳐지고 있다.
미 공교육 부실화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어 보고 싶다. 다만 요점만 이야기한다면 미 공교육은 현재 부실해질 대로 부실해져 있으며 이 피해자는 결국 비싼 등록금을 댈 수 없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없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이다.
이런 연대가 일시적 사건으로 끝나버릴지, 일부 지식인들의 말대로 새로운 미국을 만드는 초석이 될지, 아니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이끄는 파국으로 치달을 단초가 될지 미국과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