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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추억이 된 크리스마스실… 결핵협회는 시름시름

입력 | 2014-12-20 03:00:00

2014 성탄절 新풍속도-가족
달라진 세태, 또 하나의 풍경




과거 크리스마스실에는 민속놀이나 민속의상처럼 전통에 집중한 디자인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 중반 이후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2008년), 피겨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2009년), ‘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 뽀로로(2011년)가 등장하기도 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실(아래 맨 오른쪽) 주제는 우리나라 고유의 동·식물로 사진은 그 가운데 하나인 열목어다. 대한결핵협회 제공

고등학생 최모 양(17)은 얼마 전 학교에서 3000원을 주고 크리스마스실(Seal) 한 세트를 샀다. 서랍을 뒤져보니 지난해 등 여러 해 전의 실들이 남아있었다. 해마다 실을 샀지만 사용한 적은 없다. “결핵 환자를 돕는다는 취지도 좋고 김연아 디자인(2009년)처럼 예쁜 것도 있지만 편지 보낼 일이 없어 거의 묵혀두고 있어요.”

누구나 연말이 다가오면 학교의 교실과 공공기관에서 파는 크리스마스실을 샀던 기억을 떠올린다. 실제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해 발행하는 크리스마스실을 사는 가장 ‘큰손’은 초중고교와 공공기관이다.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한결핵협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크리스마스실 모금액 39억 원 중 절반이 넘는 21억 원(54.4%)이 학교에서 걷혔다. 공무원 모금액은 29%(11억4000만 원)를 차지했다. 김 의원은 “학생과 공무원의 비자발적 모금으로 결핵퇴치 사업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마다 강매 논란을 불러왔던 실 판매가 내년부터는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 정부가 지난달 ‘결핵예방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켜서다. 정부 각 기관과 공공단체 등의 실 모금 협조 의무 폐지가 개정안의 핵심이다.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크리스마스실을 의무적으로 구입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체국과 관련 쇼핑사이트에서만 살 수 있다.

대한결핵협회는 “모금 협조 의무 덕에 실 모금이 많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라며 “결핵예방법 개정으로 모금액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우표 형태로 발행되던 크리스마스실은 2003년부터 스티커 타입으로 만들어졌고 2007년부터는 전자파 차단을 위한 휴대전화 부착용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다양한 판로 변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판매량 증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핵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한국의 결핵 유병률은 2012년 10만 명당 14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다. 새로운 환자도 해마다 3만∼4만여 명씩 발생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실 기금은 결핵환자 수용시설과 학생 결핵환자 지원 사업 등에 쓰인다. 결핵협회 측은 “앞으로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이나 모금 형태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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