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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복날 대목 버금가던 치킨집, 징글벨 콧노래 사라져

입력 | 2014-12-20 03:00:00

2014 성탄절 新풍속도-경제




‘여행 대목’으로 떠오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여행업계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들로 공항이 북새통을 이룬다(위쪽 사진). 반면 유통업체들은 불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조용해도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요….”

서울 종로에서 20년째 프랜차이즈 브랜드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이영희(가명·48·여) 씨는 올해 크리스마스 매출 얘기가 나오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그의 가게에는 10년 전만 해도 12월이 되면 낮부터 주문 전화가 폭주했다. 눈 오는 날이면 정신이 없을 정도로 치킨을 튀겨야 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기간(24, 25일) 매출은 평일의 2배 이상으로 올라가 ‘3대 복날’과 함께 1년 중 최대 대목으로 꼽혔다.

하지만 올해 12월에는 주문 전화가 뚝 끊겼다. 이 씨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최근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나온 신제품에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그는 “캐럴도 들리지 않고 사람들도 즐거워하지 않다 보니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연말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없는 유통업계

크리스마스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캐럴은 듣기 어렵다. 각종 사건 사고로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대목을 기대했던 대형 유통업체와 동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X-mas’의 ‘X’가 ‘(매출) 곱하기’가 아닌 ‘실패’나 ‘엑스(부정적인 의미)’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적신호’는 각종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빅3’ 업체는 지난달 말부터 2주간 대대적으로 겨울 정기세일 행사를 벌였다. 하지만 매출 신장률(지난해 대비, 신규 점포 제외)이 1∼2%대에 머무는 등 성과는 부진했다. 지난해 세일 기간 동안의 매출 신장률이 5∼8%대였던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외식업 쪽의 분위기도 다를 바 없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최근 549개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연말 기대 매출을 설문조사한 결과 10곳 중 9곳(90.9%)이 ‘올해는 지난해 12월보다 매출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트리’ 제조 업계는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직격탄’을 맞았다. 디오트리의 이두환 팀장은 “이전에는 경기가 안 좋아도 심리적 위안을 받고 싶은 심리 때문에 트리가 잘 팔렸지만, 올해는 그런 것도 안 통한다”고 말했다. 올해 트리 제조업체들은 높이 1m 이하의 소형 트리 등 비교적 저렴한 제품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다양한 트리 제품을 판매했던 이마트도 올해 물량을 지난해보다 40% 줄였다. 그 대신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쓸 수 있는 양초나 사슴 조형물 등 인테리어 소품 비중을 30% 늘렸다.

카드 업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엔 사람들이 모바일, 온라인 카드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내다 보니 4년 전 200억 원 가까이 되던 시장 규모가 반토막이 났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대량으로 만들던 업체들은 전문 디자이너를 고용해 만들거나 금박 등 화려한 장식을 넣은 ‘한정판’ 혹은 소수의 고급화한 제품 위주로 옮겨가고 있다.

대형마트와 식품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AK플라자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열던 사은 행사를 올해는 기간을 늘려 2주 전인 11일부터 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행사를 여는 곳도 있다. 롯데마트는 최근 기저귀를 판매하면서 1박스에 2만6500원 하는 기저귀 5박스를 사면 6만5000원짜리 어린이 모형 자동차 ‘라바 번개카’를 주는 행사를 열었다. 마트 측은 “사은품이 더 비싼 것임을 알면서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밖에서 식사’ 대신 ‘집에서 나를 위해’

크리스마스 무렵의 분위기가 바뀐 이유로 일부 전문가들은 크리스마스를 대체할 만한 ‘대체 기념일’이 많이 생겨난 것을 꼽는다. 크리스마스를 그냥 쉬는 날로 여기는 사람이 늘다 보니 예전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등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의식적 행위’를 하지 않게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 불황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소비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위축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지 않고 자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유통업체나 거리에서 캐럴을 듣기 어려운 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예전만 못한 것에 한몫한다. 한 유통업체는 5년 전까지 매장에서 유명 가수들이 부른 캐럴을 틀었지만, 이후로는 경기 불황에 저작권료라도 아껴보겠다며 캐럴을 거의 틀지 않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꼭 캐럴을 틀어야 할 때는 저작권 보호기간(사후 70년)이 지난 곡들이나 내부 직원들이 연주한 음악을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밖에서 흥이 나지 않다 보니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유명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던 사람들이 집에서 가족들과 요리를 해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는 움직임이 크다.

이 덕분에 CJ제일제당이 12월 한 달 동안 본사(서울 중구 동호로) 내 ‘백설요리원’에서 진행 중인 ‘파티 요리 클래스’ 같은 요리 강습 프로그램이 인기다. 파티 요리 클래스는 참가자들이 임희원, 박준우 씨 등 유명 요리사들과 함께 레스토랑의 파티 요리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이다. 오믈렛과 스페인 요리를 배웠다는 주부 김지은 씨(31)는 “아이(두 살) 낳기 전에는 외식을 많이 했는데 요즘엔 식당 예약하기도 힘들뿐더러 가격도 비싸 부담 된다”며 “올해는 집에서 편하게 가족들과 직접 음식을 해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얼마 전부터는 ‘남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보다는 1년 동안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최근 20∼60대 고객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나 자신에게 크리스마스 및 연말 선물을 하겠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95%나 됐다.

나 홀로 활황 맞은 여행업계

직장인 정혜란 씨(30·여)는 올해 크리스마스 즈음에 친구들과 베트남 하노이로 4박 5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여름부터 계획을 짰고 9월에 이미 항공편을 예약했다. 휴일이 아닌 26일과 29일은 회사에 휴가를 냈다. 크리스마스에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 정 씨는 “크리스마스 때 함께 있을 남자친구도 없고, 특별히 무언가 할 것도 없어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가 ‘여행 대목’이 됐다. 고객들이 지갑을 열지 않아 고심 중인 유통업계와 달리 여행업계는 정 씨처럼 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징검다리 연휴를 즐기는 직장인이 몰리면서 ‘나 홀로 활황’을 맞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그냥 ‘빨간 날’(쉬는 날)로 인식하는 사람이 늘면서 국내외 관광지로 떠나는 사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크리스마스(25일)가 목요일이어서 금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4일을 쉴 수 있다. 그 다음 주 1월 1일도 목요일이어서 2주 연속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진다.

크리스마스 여행객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하나투어가 최근 발표한 크리스마스 해외여행객 통계(23∼25일 기준)를 살펴보면 2012년에는 9500여 명, 지난해에는 1만2200여 명이 하나투어를 통해 해외로 떠났다. 하나투어는 올해는 1만4700여 명이 해외여행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2월 전체 출국자 수도 증가세다. 지난해 12월 한국인 출국자 수는 120만4463명으로 5년 전인 2008년(66만7564명)의 1.8배로 늘었다. 인터파크투어의 한 관계자는 “특히 최근 들어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여행을 가려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12월이 겨울철 중 최고 성수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몇 년 전부터 일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남은 연차를 연말에 모두 소진하게 하면서 불이 붙었다. 두산그룹은 2011년부터 종무식을 12월 23일에 열어 크리스마스이브(24일)부터 월말(31일)까지 직원들이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범석 bsism@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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