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진료지침은 의료 한류에도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대학병원에서 심혈관 수술을 받은 러시아 환자와 담당 의료진. 동아일보DB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환자와 가족은 물론이고 의사들이 신뢰할 수 있는 최상의 의료 서비스와 환자 안전을 보장하는 ‘지침’을 만들고 이를 명문화할 때만이 한국 의료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한의학회가 임상진료지침 연구사업단(임상진료지침정보센터·KoMGI·www.guideline.or.kr)을 발족시킨 점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미 표준지침을 만들 전문가 그룹이 있고 여기에 관심 있는 의사나 그룹을 대상으로 홍보와 교육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 최신-최상 치료법 정리한 임상진료 지침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도대체 임상 진료지침이 뭐길래 그리도 중요하다고 말하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임상진료지침이란 한마디로 전 세계에 보고된 최신의 과학적 정보와 함께 한국 내 치료 결과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최신 최상의 치료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일종의 ‘진료대본’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가장 양질의 근거(current best evidence)까지 사용해 환자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 방법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지침대로 따르기만 하면 안심하고 안전하게 가장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 국민-의료계-정부 모두에 이익
환자와 의료계와 정부가 서로 합의하고 공개된 대본을 앞에 놓고 의료비용을 산출하기 때문에 상호 신뢰의 문화까지 자연스럽게 덤으로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은 권고 사안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다. 마치 건축자재들의 규격이 통일되어 있으면 초보자들도 집짓기가 편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처럼 의료지침도 표준화해 이를 참고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어느 병원을 가도 비교적 안심하고 저렴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진료지침을 만드는 과정을 가상으로 꾸며 보면 이렇다.
①지침의 테마(고혈압 관상동맥질환 등)가 결정되면 지침 개발위원회가 구성된다 ②개발, 검토 및 수정, 이해당사자 간 의견 청취, 최종 발행 배포 과정을 기획한다 ③방대한 양의 문헌을 검색하고 선택 평가하여 각종 근거를 종합하고 등급화해 치료 근거의 평가와 표를 만든다(메타분석·meta analysis) ④권고안을 도출한다 ⑤이해당사자가 모여 경제적 타당성까지 포함하는 합의안을 도출한다 ⑥출판하고 배포한다 ⑦외부 검토와 갱신계획을 결정한다.
다음 호에는 필자가 치료하는 환자의 예를 들면서 표준지침이 만들어지면 어떤 세상이 가능할지 가상 대본을 하나 작성하여 공감해 보고자 한다.
이정렬 서울대병원 흉부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