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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최영해]권력 주변에서 指鹿爲馬 하는 무리

입력 | 2014-12-23 03:00:00


진시황제를 섬기던 환관 조고(趙高)는 시황제가 사망하자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나이가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했다. 간교한 술책을 부려 원로 중신들을 처치하고 최고 관직인 승상에 올라 조정을 한 손에 틀어쥐었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끌어다 어전에 갖다놓고 “말입니다”라고 했다. 황제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느냐”라고 묻자 조고는 끝까지 말이라고 우겼다.

▷호해가 중신들에게 “저게 뭐 같소? 말이오, 아니면 사슴이오?”라고 되묻자 조고를 두려워한 중신들은 “말입니다”고 답했다. 그중엔 “사슴입니다”라고 직언한 사람도 몇 있었지만 조고가 나중에 죄를 뒤집어씌워 모두 죽여 버렸다. 그 뒤로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호해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해 정사에서 손을 뗐다고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적었다.

▷교수신문이 대학교수 724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이다. 사기에서는 윗사람을 농락한다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흑백이 뒤바뀌고 사실이 호도되는 것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사안의 본질에 눈감으면서 이리저리 둘러대는 권력자를 향한 쓴소리로 들린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유출된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둘러싼 권부의 대응 방식을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다. 십상시(十常侍)니 7인회 같은 말이 청와대 언저리에서 어지럽게 맴돌고 있다. 이 중에도 혹시 대통령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일컫는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년 이맘때 교수신문이 뽑은 단어는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순리와 정도에서 벗어나 일을 억지로 강행한다는 뜻이다. 새 정부 출범 후 기대와 달리 거듭되는 정책과 인사 실패를 비꼰 말이었다. 지록위마나 도행역시에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과 실망감이 배어 있다. 대학교수들 학점이 짜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왜 이리 야박한 평가를 두 해 연속 내리는지 청와대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