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자유민주사회의 정상적 귀결 헌재에 경의를 표하는 건 ‘봐줘서 고맙다’는 인상으로 결정의 무게를 깎아내리는 일 민주주의, 사회적 다양성, 진보에 대한 사형선고가 아니라 그런 가치들의 옥석을 가리는 과도기적 고통일 뿐
심규선 대기자
두 사람의 발언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듣는 순간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경의’나 ‘기립박수’라는 말에서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그 지긋지긋한 진영논리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쪽이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면 반대편은 비난해도 되는 것 아닌가. 이런 발언들은 오히려 헌재 결정의 의미와 무게를 깎아내린다.
혹자는 되물을 것이다. 헌재가 통진당을 해산시키지 않았다면 비난을 했을 것 아니냐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요행을 바랐는데 빗나가서가 아니다. 헌재가 해산 결정을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실제로 해산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경의까지 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8 대 1이라는 헌재 결정이 그렇고, 60% 이상이 통진당 해산에 찬성한다는 여론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통진당이 민주주의에 필요한 존재가 되려 했다면 종북과 결별해야 했다. 통진당이 사회적 다양성에 기여하려 했다면 종북과 결별해야 했다. 통진당이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려 했다면 종북과 결별해야 했다. 통진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헌재는 종북과 민주주의를 동렬에 둘 수 없다며 그들이 타고 있던 위험한 외줄을 끊어냈을 뿐이다.
땅으로 내려온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의 박수를 구걸하지 말고 남쪽에서 박수를 받도록 하면 된다. 헌재의 결정은 오히려 진정한 민주주의, 건전한 사회적 다양성, 지지받는 진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본다. 이런 환경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통진당 지지자들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일부는 심리기간이 짧았다고 비판한다. 이번 결정은 민주노동당까지 거슬러 올라간 15년간의 활동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다. 헌재는 수사기관이 아니다. 제시된 자료를 근거로 판단했을 뿐이다. 불리한 자료를 무더기로 제공한 것은 통진당 스스로다. 수사가 아니라 판단을 하는 데는 1년이면 족하다.
국민의 판단에 맡겼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헌재의 결정도 훌륭한 국민적 판단이다. 헌재가 생긴 배경을 거론하며 헌재를 비판하기도 한다. 헌재는 군사독재를,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민중의 힘으로 종식시키며 탄생했다. 그런 헌재가 3대세습과 독재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을 격리한 것이 흠결이 될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소멸했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헌재가 그 기간을 앞당겼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헌재 재판관의 구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왜 이번 결정에만 그게 문제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주장을 하면 분명 ‘보수 꼴통’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까지 ‘그레이 존’에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종북 진보’에조차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오히려 ‘순수 진보’가 설 땅을 좁혀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밥에 섞인 저것은 현미가 아니라 분명 돌이라고, 정규 레인을 벗어나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면 절대로 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해야 할 때다.
헌재 결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사성어가 나왔다. 헌재 소장은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이라는 말로 엄정함을 강조했고, 해산에 반대한 재판관은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로 포용을 호소했다. 어느 재판관은 겉과 속이 다름을 가려야 한다며 피음사둔(피淫邪遁)이라는 말을 썼다. 법무부 장관은 제궤의혈(堤潰蟻穴)이라는 말로 작은 방심을 경계했다. 나는 앙천이타(仰天而唾)와 수원수구(誰怨誰咎)를 덧붙이고 싶다. 통진당의 반발은 누워서 침 뱉는 격이며,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할 일이 아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