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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던진 대입간소화 “미흡”… 여론 귀기울인 치유 숲 “양호”

입력 | 2014-12-24 03:00:00

[2014 대한민국 정책평가]전문가 총괄평가




“정책을 조용히 마련해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 추진 사실이 외부로 새면 공무원의 목이 날아가지 않겠나.”

동아일보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한국의 대표정책 40개 중 13개가 소통 부족 때문에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을 놓고 정부 부처의 한 고위 관료는 “현실적으로 정책 수립 단계에서 여론 수렴이 쉽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만들면서 국민보다는 인사권을 쥔 대통령을 우선 고려하기 때문에 국민생활과 동떨어진 정책이 양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 정권 바뀔 때마다 정책 급조

평가에서 2.9점을 받는 데 그친 ‘대학입시 간소화’ 정책은 입시전형을 간단하게 만들어 대입 준비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명분은 좋았지만 정책을 급하게 만든 결과 국민들의 혼란이 커졌다.

실제 교육부가 지난해 8월에 내놓은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은 전문가 8명이 참여하는 대입제도연구위원회가 4개월 만에 만들었다. 교육부는 “시안 발표 후 설문조사를 해보니 학부모, 고교 교사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설문조사는 9월 초 4일 동안 2708명만을 대상으로 했다. 표본이 너무 적었다는 지적이 많다.

기초연금제도에 대한 전문가와 일반인의 평점이 2.8점에 그친 것도 정부 역량의 한계를 드러낸 예다. 지난해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일부 위원이 “20만 원을 모두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설익은 발언을 해 불신이 시작됐고, 진영 복지부 장관이 연금 지급 방식에 이견을 보이면서 작년 9월 사퇴해 정책에 대한 신뢰가 더욱 하락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제도 추진 초반부터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여러 변수를 명확히 설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 ‘잘한 정책’ 벤치마킹 필요


소통 부족의 문제는 정책을 만들어내는 방법과 과정이 잘못돼 생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료는 “정책 생성 단계에서 여론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중앙부처 공무원들끼리 만나 오랜 기간 축적해온 자기 부처 민원 중 그럴싸한 내용을 하나씩 테이블 위에 꺼내 놓고 논의하면서 정책의 골격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고위 공무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며 살을 붙여 가는 방식이다. 이런 과정에는 국민의 목소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정부가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마련할 때도 여론조사를 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숨겨두고 ‘요즘 살림살이가 어떠냐,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느냐’ 하는 두루뭉술한 질문만 던졌다.

반면 민감도가 떨어지는 정책은 소통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편이다. 산림청의 ‘치유의 숲’ 조성은 국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사례다. 치유의 숲이란 대도시에 숲길, 화원 등을 조성하는 정책이다.

산림청은 당초 대도시 내 치유의 숲 조성을 위해 필요한 면적 기준을 국공립 숲의 경우 50만 m²로 정했다. 하지만 대도시에서 이렇게 넓은 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달 ‘규제개혁신문고’에는 ‘도시에 고혈압, 아토피 같은 각종 질환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필요한 만큼 기준 완화가 절실하다’라는 건의가 올라왔다. 산림청은 이런 여론을 반영해 이달 4일 관련법 시행령을 개정해 숲 조성을 위한 면적 기준을 절반으로 줄였다.

잘한 정책으로 분류된 ‘사병 봉급인상’ 정책에 대해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병사의 노고에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잘 반영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정부학연구소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정책의 경우 무리하지 말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집행시기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대북지원, 실생활 무관” 2.6점 그쳐 ▼

전문가 3.2점 높은 점수와 대조… 추상적 정책도 일반인 낮은 평가


이번 정책평가 과정에서 일반인 응답자들은 거시적인 정책보다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정책에 호감을 보이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생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적은 정책일수록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줬다.

이런 경향은 외교안보 분야 평가 결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거시적 중장기 정책인 통일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확대 및 호혜적 교류협력 활성화’에 대한 평가에서 일반인 응답자들이 매긴 점수는 평균 2.6점이었다. 전문가 집단은 이보다 높은 평균 3.2점을 줬다. 반면 가족이나 지인들의 삶과 밀접한 국방부의 ‘병사 봉급 인상’ 정책에 대한 일반인 평균 점수는 3.1점으로 전문가 집단(3.2점)과 비슷했다.

또 보건복지부 ‘국민의 기본적 생활보장 내실화’ 정책(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점수는 평균 3.5점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2.7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내렸다. 일반인들이 정책의 혜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대해 한국리서치 관계자는 “정책 내용이 어렵거나 추상적일수록 일반인들이 전문가보다 낮은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정책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경향은 주관식 답변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일반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설문조사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묻는 주관식 문항에 응답자들은 ‘주택난’ ‘단통법’ ‘무상보육’ ‘일자리’ 등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많이 언급했다.

▼ 40개 주요정책, 전문가 200명-일반인 2000명 설문 ▼

정책평가 어떻게 했나


동아일보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는 국민의 행복과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을 체계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정책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취지로 ‘2014년 대한민국 정책평가’ 프로젝트를 공동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예산이 투입된 계속사업 또는 신규사업을 대상으로 크게 3단계에 걸쳐 평가할 정책을 선정했다. 우선 정부 각 부처, 청, 위원회로부터 주요 정책 목록을 제출받았다. 이후 동아일보 각 부서의 부처 담당 기자들과 연구에 참여한 고려대 교수들이 부처 제출 정책들의 적정성을 따져 경제 사회복지 교육문화 외교안보 등 4개 분야별로 20개씩 총 80개 정책을 추려냈다. 마지막 3단계로 일반인 600명, 정책 전문가 8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연구진의 검토를 거쳐 분야별로 10개씩 총 40개 정책이 평가 대상으로 확정됐다.

정책에 대한 평가도 3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일반인 2000명과 전문가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한 뒤 정책 투명성, 실현 가능성, 효과성, 사회현안 반영도 등 9개 평가지표에 대해 5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점수를 부여하도록 설문 문항을 구성했다. 2단계로는 연구진이 부처 자료와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9개 평가지표에 따른 ‘정성평가’를 실시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 전문가, 연구진의 평가결과를 가중치를 달리해 합산한 후 개별 정책의 점수를 산출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팀원
=홍수용 김준일(경제부) 김희균 유근형(정책사회부) 조숭호(정치부) 최고야(소비자경제부) 기자

정책평가 총괄
: 염재호, 최진욱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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