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
김화성 전문기자
겨울바다에도 보리밭이 있다. 넘실넘실 검푸른 바다풀이다. 김 감태 미역 파래 매생이…. 영락없는 푸른 명주실이다. 매생이가 더욱 그렇다. 옛사람이 보는 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생이는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다.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정약전 ‘자산어보’)
매생이는 미역도 아닌 것이 미끌미끌하고, 감태나 파래도 아닌 것이 가늣하다. 오죽하면 ‘실크파래’라고 했을까. 김도 아닌 것이 맑은 물에서만 산다. 멍게도 아닌 것이 향긋한 냄새를 솔솔 풍긴다. 그렇다. 매생이는 겨울바다 찬물에서 햇살만 먹고 자란다. 딸깍발이 선비처럼 고고하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삼베바지 방귀 새듯 사라진다.
매생이국은 ‘물이 좀 적다 싶게’ 되직하게 끓여야 한다. 아무리 끓여도 김이 나지 않는다. 끓이다 보면 처음엔 검푸른 색이지만, 다 익으면 녹색으로 바뀐다. 바로 그때가 불을 끌 시점이다. 너무 오래 끓이면 풀어져 향이 없어지고, 녹아버린다. ‘덖는다’는 기분으로 끓여야 향긋하다. 전자레인지 사용은 절대 금물. 국물이 온 사방으로 튄다.
‘얼어붙은 겨울 아침/두레 밥상인데/진초록 바다풀 남실/흰 사발마다 담겨있네/뉘도 모르는 사랑에 막 빠진 처녀처럼/펄펄 끓어 뜨거워도/수줍어, 김나는 기척도 없이/향긋하고 시원한/겨울바다 한 소식을 전하네’(김윤 ‘매생이국’에서)
감태(甘苔)는 ‘단 이끼’라는 뜻이다. 밝은 초록색이다. 매생이보다 올이 굵고 향이 진하다. 쌉싸래하면서도 새록새록 단맛이 돋는다. 바다의 고들빼기라고나 할까. 감태김이 최고다. 감태를 찬물에 풀어 감태발로 얇게 떠 말리면 된다. 세상에 그런 밥도둑이 없다. 먹고 돌아서면 다시 찾는다. 굽지 말고 날것 그대로 싸 먹어야 제맛이 난다. 익히거나 구우면 색깔이 변할뿐더러 향과 맛이 떨어진다.
감태무침도 있다. 조선간장에 깨와 참기름 그리고 약간의 고춧가루를 섞어 무친다. 상큼하면서도 씁쓰름 달콤하다. 감태김치는 감태에 마늘, 생강 그리고 찧은 풋고추를 넣고 곰삭게 놔두면 된다. 김 무럭무럭 나는 고봉밥에 얹어 먹으면 기가 막힌다. 연신 “호오! 호오!” 입소리를 내면서도 젓가락은 자꾸만 감태김치 쪽으로 간다. 배추김치와 섞어 참기름에 비벼 먹어도 꿀맛이다. 눈이나 비 오는 날엔 감태부침개가 으뜸이다. 햐아,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 그 맛과 향이란….
미역은 한자로 ‘해대(海帶)’라고 한다. 허리띠처럼 갯바위에 단단히 붙어살기 때문이다. ‘해채(海菜)’ 즉 ‘바다의 채소’라고도 불린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채소보다 많아 얻은 이름이다. 미역은 겉에서 미끈거리는 점액질(알긴산)이 나온다. 그 점액질은 위의 점막을 자극해 소화를 돕는다. 자연산 미역은 오래 끓여도 퍼지지 않고 진한 국물이 우러나온다. 양식 미역은 푹 끓이면 퍼져 버린다. 미역은 파 종류와 같이 먹으면 안 된다. 파에 있는 인과 유황 성분이 미역의 칼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상도 하지/미역국 먹으면 분노도 고통도 사라지고/순한 고요가 몸 가득 출렁이지/몸이 곧 마음인 걸 믿게 하는 국이지//마음이 허한 날은 미역국을 끓인다/입안에 부드럽게 감기는 푸른 바다’(이규리 ‘미역국’에서)
그렇다. 겨울바다는 ‘바다풀! 바다풀!’ 하면서 자장가를 부른다. 그렇게 도담도담 매생이 파래 감태 미역을 키운다. 사람은 바다풀을 먹으면 순해진다. 바다는 ‘바닥’이다. ‘바닥’이 억만 년 닳고 닳아 ‘ㄱ’자를 지우고 마침내 ‘바다’가 됐다. 모든 것을 품 안에 ‘받아’줘서 바다인 것이다.
마침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예수는 이 세상 가장 낮은 땅에 와서 못난이들의 친구가 되었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 배고프고 집 없는 사람을 무조건 안아 줬다. 그렇게 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에서 사랑의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