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공로상 받는 윤태호 작가
윤태호 작가는 “미생은 40대가 돼 들을 귀가 생기면서 가능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60세가 돼서도 독자들과 같이 호흡하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그는 만화와 드라마의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인물로 장그래 역의 임시완을 꼽았다. 임시완의 얼굴 윤곽 등이 장그래와 많이 닮았고, 내면까지도 닮은 구석이 있다는 것. 또 김동식 대리 역의 김대명, 한성율 역의 변요한도 닮은 캐릭터로 꼽았다. 그에게 만화와 드라마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하자 “만화와 드라마의 문법이 다른 데서 오는 것 같다”며 “만화가 일 자체에 중점을 뒀다면 드라마는 인물을 더 도드라지게 다뤘다”고 말했다.
후속작도 상당히 진척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년 3월이나 4월 시작할 예정이다. ‘미생 시즌2’는 크게 세 덩어리다. 먼저 회사의 경영 문제를 다룰 것이다. 중소기업이 벌어온 돈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들여다볼 것이다. 두 번째 축은 일 자체에 대한 것이다. 일이 어떻게 기획돼서 어떤 과정을 통해 성사되는지 그 과정을 다뤄볼 생각이다. 예컨대 요르단 중고차 수출업 등을 생각 중이다. 나머지 한 축은 결혼에 대한 직장인들의 태도다. 결혼 때 빚을 지는 문제 등 결혼 풍속도를 담을 것이다. 물론 장그래를 비롯한 신입사원 4명의 사랑과 결혼을 통해서다.”
시즌1이 조훈현 9단이 네웨이핑(攝衛平) 9단을 이긴 잉창치배 5국(145수)을 기보와 함께 풀어갔다면 시즌2는 이창호 9단이 스승 조훈현의 타이틀 중 처음으로 자기 것으로 가져온 최고위전 결승 최종국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당시 이창호는 262수까지 가는 혈투 끝에 반집을 이겨 스승에게 ‘보은했다’. 시즌2 연재는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즌1에서는 바둑격언이나 조치훈 9단의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이란 말 등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시즌2에서도 우칭위안(吳淸源) 선생이나 여러 바둑 고수들의 일화나 말들을 넣을 생각이다.
미생은 구상단계부터 3년의 공력을 들인 작품. 여러 사람을 광범위하게 만났고 꼼꼼하게 취재해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기원 원생, 그리고 원생이었지만 프로가 되지 못하고 새 길을 찾은 황인성 아마 7단, 김지은 사이버오로 직원 등을 취재했다. 또 한국기원의 박장우 부장과 구기호 당시 월간바둑편집장, 사이버오로의 손종수 상무 등을 취재해 스토리의 설득력을 높였다. 또 종합상사 직원들을 취재할 때는 궁금한 것을 6시간 이상 캐물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취재도 중요했지만 들을 귀가 없었다면 안됐을 것이다. 40대인 지금이니까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그려낸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려서부터 피부가 좋지 않아 남들과 잘 어울리질 못했다. 그러다보니 ‘나는 왜 이럴까’ 늘 고민했다. 나를 관찰했다고나 할까. 그게 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태호 작가는 “미생은 아내도 좋아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미생이 어둡지 않고 밝아서 좋다고 했다는 것.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미생은 그의 가족들도 좋아한다. 아내는 “다른 작품들은 어두웠는데 미생은 안심하고 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는 것. 그의 초기 작품들이 어두운 데는 그가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평론가도 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미대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서울로 올라와 만화를 그리다 한때는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운 좋게 허영만, 조운학 작가를 만나 그들의 문하에서 실력을 키웠다. 1999년 결혼 뒤에도 슬럼프가 있었다. 그는 “지금 바쁜 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윤 씨는 이번 연말, 정말 바쁘다. 20일 드라마 미생이 종영됐지만 만화 판매부수는 23일 현재 220만 부를 넘어섰다. 밀려드는 강연과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것도 큰일이다. 세종대 만화학과에 주 1회 강의를 나가다 지난주에야 겨우 종강했다. “뭔가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붕 뜬 상태”여서 웹툰 ‘파인’ 연재를 중단했다. 파인은 신안 앞바다 도굴꾼들의 이야기. 다음카카오에 화, 금요일 연재 중인데 1월 6일까지 4주간 쉬면서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그는 2007년 웹툰 ‘이끼’ 성공 이후 ‘내부자들’ ‘인천상륙작전’ ‘미생’ 등 많은 화제작을 내놓았다. 유명인사가 됐지만 일주일에 2, 3번씩 찾아오는 마감을 맞추느라 몸은 많이 축났다. 그래서 7개월 전부터는 술도 끊었다.
그의 작업스타일은 밤샘형. 화요일 마감에 맞추기 위해 일요일 집에서 분당의 작업실로 나와 두세 시간 정도 눈을 붙이며 이틀간 밤샘작업으로 마감에 댄다. 그리고 잠깐 집에 갔다 작업실로 다시 돌아와 금요일 마감에 맞추는 식이다. 그는 데생 작업을 하고 인물에 대한 펜 작업까지만 한다. 그 뒤는 문하생 4명이 책임진다. 그의 웹툰 중에는 ‘이끼’와 ‘미생’이 드라마와 영화가 됐다. 현재 연재 중인 ‘파인’도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 ‘파인’은 처음으로 러닝 개런티를 받기로 했다.
윤 씨는 최근에는 만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에도 열심이다. 만화미디어전문기업 누룩미디어 대표이기도 하다. 신인작가를 육성하고 만화가에 대한 마케팅 관리도 지원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강풀 양영순 주호민 등이 이 회사 멤버. 그는 최근에는 만화리뷰 웹진 ‘A COMICS’를 만드는 일에도 관여하고 있다. 매일 나오는 만화를 리뷰해서 가이드를 해주는 곳이다.
그에게 일본 만화가 스토리가 탄탄한 것 같다고 물었다. 그는 “일본 만화가 전문적인 것은 독자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개그만화를 그린다 해도 그냥 웃겨서는 안 되고 트렌드를 잡고 있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 만화가로는 ‘드래곤볼’의 도리야마 아키라와 ‘슬램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웹툰을 그리면서 또래 독자들이 생겨났다. 이젠 이들과 같이 늙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60세가 돼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루며 함께 갈 것 같다.” 그는 40대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이미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