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라고 예서제서 문자가 날아든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에게는 올해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는, 그러므로 정리할 게 있다면 서둘러야 한다는 신호로 느껴진다. 나는 사람을 오래 미워하기도 싫고 기분 나쁜 일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것도 싫다. 인격수양이 잘되어서라기보다 내 마음이 어두운 채로 남아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해서다.
딸이 직장에 다닐 때 밉상인 상사가 있다면서 자주 투덜거렸다. “엄마, 그 과장님은 왜 그런지 몰라.” 그래서 내가 위로의 말이랍시고 “얘, 그래도 그 과장이 너의 아빠도 아니고 너의 형제도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니. 부모형제는 싫어도 바꿀 수 없지만 회사 상사는 부서만 바뀌면 안 만나잖아”라고 하니 딸이 빙그레 웃으며 맞장구친다. “맞아. 뗄 수 있는 관계라서 그나마 다행이네.”
사람뿐 아니다. 1년 365일 가운데 어느 날은 유난히 일이 척척 풀리는가 하면, 이상하게 뭔가가 자꾸만 꼬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이렇게 폭을 대버린다.
“아, 내 평생에 할당된 재수 없는 날들이 있을 텐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모양이구나. 이로써 나의 할당량이 하루 줄었네.”
나는 이리저리 폭을 대가며 더 나쁜 것에 빗대어 상대적인 평안을 얻는데, 박영희 시인은 아예 한 수를 접어준다고 한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접기로 한다/지폐도 반으로 접어야/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다 쓴 편지도/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두 눈 딱 감기로 한다’(박영희의 ‘접기로 한다’ 중에서)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