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소재 영화’ 美 개봉]
▼김정은이 감추고 싶은 ‘독재의 허상’ 고발▼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
옷을 거의 벗은 기쁨조 앞에서 술 취한 김정은(왼쪽)이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김정은 자신이 평양에 불러들인 두 명의 미국 언론인에게 목숨을 잃고 북한이 해방된다는 결말은 비록 코미디 영화라지만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헬기를 탄 극 중 김정은이 미국 언론인들이 쏜 대포알에 맞아 불타 죽어가는 장면이나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기쁨조와 밤을 즐기는 김정은의 모습이 공개적으로 상영되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비록 영화에서라도 ‘수령’의 존엄이 침해되는 것을 막을 것을 강요하는 ‘유일사상 10대 원칙’에 어긋난다.
김정은을 처음 인터뷰하는 특종을 잡게 된 앵커 데이브 스카이라크(제임스 프랭코 분)는 평양에 들어가 김정은과 식사와 농구를 함께하고 기쁨조와 환락을 경험한 뒤 ‘독재 권력의 마력’에 빠져 허우적댄다. 스카이라크는 김정은을 암살하라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령을 거부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국영상점 식품진열대에 놓인 과일과 음식이 모두 전시용 가짜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눈을 뜨게 된다.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깨달은 스카이라크가 김정은의 생방송 인터뷰 도중 “왜 국민을 굶기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하는 대목에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저급한 상업주의 저작물”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야말로 김정은과 북한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 전혀 北같지 않은 무성의한 설정에 실망 ▼
주성하 기자·김일성대 졸업
영화 속에서 김정은(위쪽)이 미국 기자와 함께 탱크를 몰고 야외로 놀러간 장면.
일단 영화 전체에서 제작자들이 북한을 모른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평균적 북한 상식에도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북한 군복을 입은 동양인 배역들을 제외한다면 전혀 북한다운 냄새가 풍기지 않는 배경에서 북한 같지 않은 설정이 이어졌다. 영화 제작자들이 북한 관련 책은 읽어보고 제작했는지 의문이다. 코미디 영화라는데 웃기지도 않았다. 김정은을 암살한다는 요소를 빼면 작품성은 평가하기 민망한 수준으로 보였다.
역시 북한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엄청나게 화가 날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이 오히려 이 영화를 북한에서 상영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제(미국)가 우리를 얼마나 왜곡 중상하고 조선 사람을 멍청하게 묘사해 조롱하는지 생생한 증거가 여기 있다”면서 말이다. 북한 쪽에서 이 영화만큼 훌륭한 반미 교재가 또 있을까 싶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영화가 이렇게 목달개(깃받이)까지 붙어 있는 북한 군복을 제대로 만들어낼 줄 몰랐다. 정체 모를 군복에 견장마저 거꾸로 단 북한군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들은 이것만큼은 따라 배웠으면 좋겠다.
▼ ‘최고존엄’ 희화화… 번뜩이는 풍자는 없어 ▼
강유정 영화평론가
헬기를 탄 김정은이 미국 기자가 쏜 탱크 포탄에 맞아 죽기 전에 비명을 지르는 클로즈업 장면.
하지만 ‘인터뷰’는 김정은이라는 인물에 대한 태도가 애매하다. 김정은이 겉으로는 미국 타도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미국 문화에 경도된 오타쿠처럼 희화화하지만 동시에 김정은이 “이런 연극놀이에 지쳤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할리우드 배우인 제임스 프랭코와 세스 로건의 연기는 볼만하다. 하지만 중간 중간 어색한 한국어가 등장하는 데다 김정은 역할의 랜들 파크와 실제 김정은의 일치도가 낮아 이질감이 느껴진다.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하기가 다소 어려운 영화다. 북한의 협박과 개봉 취소 등 일련의 해프닝이 없었다면 그냥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 하고 잊혀졌을 영화다.
정리=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