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통 요리 중에 ‘보르시’가 있다. 빨간색 사탕무에 쇠고기 등을 넣고 끓인 수프로 한국의 쇠고기뭇국 같은 구수한 맛이 난다. 러시아인들은 여기에 서양식 사워크림을 넣어 먹는다. 동서양 요리의 만남이랄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길을 걸은 러시아는 굳은 빵 조각과 얼린 야채 구하기도 힘들었던 사회주의 시절과는 딴판이 됐다. 러시아의 풍요는 지금까지 고(高)유가의 덕도 크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러시아는 예로부터 동서양을 융합한 독특한 문화를 이뤘다. 1240년부터 240년 동안이나 몽골의 지배를 받았지만 18세기에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표트르대제가 강력하게 서구화를 추진했다. 그가 유럽의 선진 도시를 본떠 건설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원조 격인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의 로마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러시아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은 양극단을 달린다. 한쪽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이나 차이콥스키의 음악에서 솟아나는 문화적 감동이다. 다른 쪽은 스탈린의 무시무시한 독재와 광복 직후 북한에 김일성 정권을 세운 ‘악의 축’ 이미지다. 한정숙 서울대 교수는 기고문에서 “러시아는 혁명 후 평등주의 과정에서 무리수도 많이 뒀지만 복지 의료 교육 양성관계 등에서 모범이 될 만한 제도를 이룬 것도 사실”이라며 서구의 눈으로만 러시아를 보지 말라고 조언했다.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은 평일 오후에도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을 감상하는 시민들로 가득 찬다. 종교를 탄압한 사회주의 체제를 거쳤음에도 러시아정교도들은 깊은 신심(信心)을 잃지 않았다. “러시아에 범죄가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현지 한국 기업인은 “러시아 민족은 여자와 아이를 해치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여성과 아이 같은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는 한국보다 드물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5000달러로 한국보다 1만 달러 정도 적었다. 우리가 좀 더 잘산다고 모든 면에서 러시아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